20여년 전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 테니스 코치가 학생을 성폭행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해당 코치는 최근까지 학교 직원으로 근무하다 피해 졸업생의 문제제기로 뒤늦게 사실이 드러나자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교육청은 이 사건에 관한 특별장학을 실시하고도, 정작 추가 피해 학생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거의 조사를 벌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테니스 선수를 꿈꿨던 ㄱ씨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6년 서울의 ㄴ초등학교로 전학했다. 당시 ㄴ초등학교는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할 만큼 ‘테니스 명문’으로 통했다.
ㄱ씨의 테니스부 생활은 지옥 같았다. 테니스부 코치 김아무개씨는 학생들을 향해 성희롱 발언과 폭행을 일삼았다. 여학생이었던 ㄱ씨는 김씨의 성폭력에도 노출됐다. 김씨는 일주일에 3~4차례 ‘흰머리를 뽑으라’고 지시한 뒤 ㄱ씨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만졌다. 1997년에는 테니스부 숙소에 둘만 남은 틈을 이용해 ㄱ씨를 성폭행했다. 김씨는 ‘무덤까지 비밀로 하라’며 ㄱ씨를 협박했다. 이에 ㄱ씨는 차마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이후 김씨의 성폭행은 ㄱ씨가 학교를 졸업한 1998년 2월까지 계속됐다.
올해 초 사회 곳곳에서 이어진 ‘미투’ 폭로를 보며 ㄱ씨는 처음으로 부모에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 가해자 김씨가 그때까지 ㄴ초등학교에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는 1998년 테니스부가 없어지자 학교 행정실로 자리를 옮겨 계속 근무하고 있었다. ㄱ씨는 자신 이외에도 피해 학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지난 4월 교육부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를 통해 김씨를 신고했다.
교육부로부터 사안을 넘겨받은 서울동부교육지원청은 4월13일 특별장학을 실시했다. 교육지원청은 ‘가해자가 사실을 인정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났고, 추가 피해 상황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19일 서울시교육청에 특별장학 결과를 보고했다.
문제는 교육지원청이 특별장학을 벌이는 과정에서 졸업생이나 재학생 전수조사 등 김씨로 인한 추가 피해 사실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ㄴ초등학교 쪽은 “학교 시설물 등을 수리하는 직원인 김씨가 학생들과 거의 접촉할 일이 없는데다, 해마다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도 김씨의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다”며 추가 피해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교육지원청은 ‘추가 피해자가 없다’는 학교 쪽의 주장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 김씨에 대한 충분한 징계심의 없이 사표를 수리해버린 ㄴ초등학교의 행태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씨는 특별장학 사흘 전인 4월10일 학교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듣고선 곧바로 성폭력 사실을 인정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ㄴ초등학교는 16일 김씨의 사표를 수리했다. ㄴ초등학교 관계자는 “교원 징계시효(10년)가 지난 상황이라 파면·해임 처분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최대한 빠른 격리를 위해 (김씨의) 사표를 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 김씨는 성추생 등은 인정하지만, 성폭행은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가해자가 교사가 아니더라도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접촉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설문조사를 통해 피해 사실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맞다”며 “학교폭력 실태조사만으로 추가 피해가 없다고 단정짓는 건 성급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황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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