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선 명동역 래핑광고. 김미영 기자
[현장] 지하철 역사 뒤덮은 도배광고 “인테리어도 하고 돈도 벌고?”
회색의 시멘트와 콘크리트 마감의 무채색 위주이던 서울 지하철 역사 내부 곳곳이 달라지고 있다. 벽이나 기둥, 난간, 천정, 개찰구 등이 화려한 광고판으로 단장,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마치 넓은 랩으로 포장하듯 덧씌워진 도배(래핑wrapping) 광고들이다. 현재까지 도배 광고는 현재 2호선 삼성, 잠실, 이대입구, 동대문운동장역과 4호선 명동, 혜화역에 설치됐다.
서울메트로(구 서울지하철공사)는 광고수익과 인테리어 효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올해부터 시범적으로 이를 도입해 반응을 본 뒤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8월 초부터 11월 초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 도배광고를 시범 실시한 도시철도공사도 최근 8호선 잠실역, 7호선 고속터미널에 도배광고를 설치했다.
◇ “인테리어도 하고 돈도 벌고”
도배광고는 기존의 광고판 등 광고매체 대신 벽이나 기둥 등에 랩을 씌우듯 광고물을 덧씌워 광고하는 기법을 말한다. 이 광고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축구선수들을 소재로 처음 등장했다.
도배광고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지하철공사가 스스로 수익구조를 만들기었다는 점 외에 기존의 노후한 무채색 벽면 대신 화려한 광고들은 소비자들에 눈에 잘 띄고, 딱딱하기 쉬운 지하철역 공간을 색다르게 바꿔준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광고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시대에 원치 않는 광고를 억지로 보는 것도 공해라는 반론도 있다. 지금은 초기 단계이지만 점차 도배광고가 늘어나면 눈의 즐거움보다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광고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 “노후한 역사가 산뜻하게 변하고, 볼거리가 생겨 좋다”는 긍정적 경우도 있지만 “시민의 공간이 광고로 오염되는 것이 싫다”는 반응으로 갈라진다. 반대론자들은 광고에 안내 표지판이 묻히고,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워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도 지적한다.
◇ 어수선한 역사, 시민들 반응은 “글쎄…”
9일 오전. 오리온 ‘심심풀이 오징어땅콩’, ‘코카콜라’, 오리온 ‘초코파이’ 홍보관으로 전락한 동대문운동장·명동·혜화역을 오가는 시민들을 만났다. 반응은 나이에 따라 달라졌다. 어르신들은 “지하철역인지 기업 홍보관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며 불만을 쏟아낸 반면, 젊은층은 ‘신선하다’ ‘재밌다’는 반응이다.
혜화역에서 만난 박아무개(70) 할머니는 “지하철을 광고가 점령하는 것 같아 놀랐다”며 “공공장소가 상업광고에 의해 변질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나종수(59·회사원)씨도 “일방적으로 한 기업의 광고가 도배되니 시각적으로 좋지 않고, 거부감부터 든다”고 평했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가는 기둥과 난간, 벽면이 SC제일은행 광고 벽지로 도배되어 있는 삼성역와 잠실역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연두색과 하늘색 톤의 이 광고물에 호의적인 편이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젊은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이곳에 도배광고가 들어서 낙후된 역사를 산뜻하게 변모시켰다는 평가를 내렸다.
박정호(25·회사원)씨는 “도배광고에 대한 거부감 없다”며 “우선 튀니까 좋고, 광고판이 지저분하지 않으며, 인테리어까지 고려한 것 같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김세련(32·회사원)씨도 “젊은층이 많은 삼성역의 특색을 잘 살렸다”며 “수익이 보장되는 상업광고뿐 아니라 공익광고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진영(29·회사원)씨는 “기업광고이긴 하지만 칙칙했던 지하철 승강장이 밝아져 보기에 좋다”며 “기업들도 세련된 광고를 통해 시민들에게 정보와 볼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해줄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 “실내장식 효과에 더욱 신경써야”
도배광고를 하자면 시각적 효과나 인테리어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절충론도 나왔다. 명동역에서 만난 박아무개(26)와 윤아무개(24) 커플은 “래핑광고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지하철역사의 래핑광고들은 일단 지저분하다는 느낌부터 들게 한다”며 “그림이나 사진, 삽화 등을 활용해 미관에 더욱 신경을 썼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시민들의 안전에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있다. 동대문운동장역에서 만난 김유나(19·학생)씨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공공장소를 기업 홍보물로 도배를 하니 정신이 없고, 혼란스럽다”며 “광고 때문에 안내 표지판 등이 눈에 잘 띄지 않아 노약자들이 다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이형선(33·회사원)씨도 “그렇지 않아도 지하철역에 광고판이 맣은데, 래핑광고까지 등장하니 지저분하다는 느낌부터 든다”며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나 연세가 드신 어른들이 역사를 이용하는데 불편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 래핑광고나 스크린도어 광고 기준 마련 서둘러야
전문가들은 래핑광고가 본격화되는 것과 맞물려 이에 대한 광고 기준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하철이 적자 운영 해소를 위해 래핑광고가 필연적이라면 소화기나 비상안내, 이정표나 안내시설 안내 등 승객의 안전을 반감시키지 않는 선에서 추진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교통운동 하혜종 교통환경팀장은 “광고물이 현란해 소화기와 비상안내등 등 안전 시설물이 승객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아 위급 상황 때 큰 혼란을 줄 수 있으며, 특히 화재가 발생하면 유독가스 등으로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며 고 지적했다.
그는 “래핑광고의 허용 구간이나 안전과 이정표의 시각적 변화, 광고물의 재질 등의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시각적 반감을 줄이기 위한 규격이나 색상의 선택 등에 있어서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 서울메트로, 스크린도어 새로운 광고수단 활용할 터
한편, 서울 메트로는 도배광고 외에 지하철 전 역사에 설치될 스크린도어도 새로운 광고수단으로 활용할 생각을 갖고 있다. 스크린도어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지하철 승강장과 선로 사이를 차단하다가 전동차가 도착하면 문이 열려 승하차할 수 있도록 하는 투명 자동문이며, 지하철을 타는 승객이면 주시할 수밖에 없어 광고효과가 뛰어나다는 장점 때문이다.
최근 가동된 사당역 스크린도어에는 현대카드의 신용카드 광고와 현대캐피탈의 자동차리스 광고가 설치됐다. 서울메트로는 “투자비가 많이 드는 스크린도어를 민간업체가 시공토록 하고 대신 해당 업체에 스크린도어 광고권을 주고 있다”며 “래핑광고나 스크린도어 광고는 깨끗하고 승객들도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 어수선한 역사, 시민들 반응은 “글쎄…”
지하철역사 래핑광고들. 위부터 2호선 삼성역, 혜화역, 동대문운동장역, 4호선 명동역. 김미영 기자
2호선 삼성역의 래핑광고.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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