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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교실 잃은 상도유치원 특수아동들…“좁은 배움의 길도 중단”

등록 2018-09-19 17:10수정 2018-09-19 22:20

‘맞춤 수업’하던 장애아동 5명 교실배정 못받아
특수학급 사라져 장애·비장애 통합수업 불가능
일반 학생들도 월·금 1시간 일찍 교실서 나와야
“좁은 배움의 길 막히지 않게”…대통령에 편지
19일 상도유치원 아이들이 임시유치원인 상도초등학교로 등원하고 있다. 학교 정문에선 유치원 원감선생님이 아이들을 맞이 하고 있다.
19일 상도유치원 아이들이 임시유치원인 상도초등학교로 등원하고 있다. 학교 정문에선 유치원 원감선생님이 아이들을 맞이 하고 있다.
“매일 아침 학교 정문 앞에서 승강이가 벌어져요. 아이는 유치원 방향으로 가겠다고 버둥거리죠. ‘유치원이 아프다’고 설명했는데 아이는 이해하지 못해요”

19일 해승이(가명)는 오늘도 상도초등학교 정문을 순탄히 넘지 못했다. 장애가 있는 해승이는 지난 6일 공사장 흙막이 붕괴로 건물이 무너져 내린 상도유치원 특수학급에 재원 중이었다. 학교 정문에서 등원을 안내하던 유치원 원감 선생님이 해승이 이름을 살갑게 부르자 그제서야 발이 땅에서 떨어진다. 해승이 어머니는 “낮에 사고가 일어났다면 우리 아이는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왜 아이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붕괴 사고 뒤 상도유치원 아이들은 바로 옆 상도초등학교에 임시로 자리를 잡았다. 학교는 방과후교실 등을 활용해 6개의 유치원 교실과 교무실·행정실 등을 마련했고, 변기 12개를 유아변기로 교체하는 등 화장실 공사도 진행했다. 지난 17일부터는 원생 119명 가운데 102명이 유치원 등원을 시작했다.

유치원이 정상 운영을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교실을 배정받지 못한 특수학급 ‘누리반’ 아이들의 상황은 심각하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 상도유치원은 청각장애·다운증후군 등 장애를 가진 5명의 아이들을 위한 교실인 ‘누리반’을 마련해 그곳에서 맞춤형 수업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임시로 마련된 유치원의 교실이 기존 7개에서 6개로 줄면서 누리반 아이들은 6개 교실로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 상도초등학교 정문 옆에 붙어 있는 교실 안내. 특수학급이 사라져 장애·비장애 아동 통합수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서울 상도초등학교 정문 옆에 붙어 있는 교실 안내. 특수학급이 사라져 장애·비장애 아동 통합수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장애아동 5명이 6개의 교실에 분산되다 보니 아이들은 특수학급 전담 교사의 돌봄을 받지 못하기 일쑤다. 특수학생 전담 교사는 시간마다 교실을 이동해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누리반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던 장애·비장애 학생 통합수업도 사라졌다. 특수학급 아동의 학부모는 “누리반에서 비장애 아동 5~6명과 장애 아동을 한 팀으로 묶어 통합수업을 진행하면서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자연스럽게 어울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었다”며 “공간이 사라진 탓에 이제 이런 통합 수업은 진행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특수학급 교실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부정적 답변만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수학급 학부모들은 “대책을 논의할 때 배려까진 아니더라도 특수학급 아이들에 대한 대책도 같은 선상에서 논의되는 게 맞다”며 “우리 아이들은 교실을 잃었는데, 소수라는 이유로 대책 마련이 계속 미뤄지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상도유치원 학부모들은 장애·비장애 아동 모두 수업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상도유치원 아이들은 매주 월·금요일이면 초등학교 아이들의 방과후 수업을 위해 교실을 1시간 일찍 비워줘야 한다. 유치원 교실이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을 빌려 쓰고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 수업은 오후 1시30분까지인데, 초등 방과후 수업은 12시30분에 시작한다. 지난 17일 1시간 일찍 교실에서 나온 아이들은 도서관·공원 등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귀가했다. 학부모들은 “화장실 이용이 불편해 아이들이 양치질 대신 가글을 해야 하는 등 일상적 불편은 감수할 수 있지만 정상적인 수업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곧 겨울이 올텐데 1시간 동안 아이들을 밖에서 떠돌게 할 순 없다”고 말했다.

특수학급에 아이를 보내는 한 학부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불안함 속에서도 상도유치원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저희 아이는 상도유치원이 사라진다면 그 좁은 배움의 길도 중단될 것입니다. 갈 곳을 잃을 것입니다. 갈 곳이 없습니다. 제발 상도유치원을 빠른 시일 내로 그대로 옮겨주세요. 아이들도 선생님도 환경도…”

아래는 상도유치원 특수학급인 누리반 어머니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의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상도유치원 누리반 ○○○ 엄마입니다. 상도유치원은 장애통합유치원으로 누리반은 특수학급반명 입니다.

이번 상도유치원 붕괴사고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납니다. ○○이를 아프게 낳아준 것도 너무 미안한데…이런 고통과 어떻게 해결될 지 모르는 또다시 오갈 데 없는 상황을 만들어 줄까 두렵습니다.

장애통합 어린이집이라고 해서 대기 걸어 순번이 왔다고 연락이 오면 하나 같이 다 거절하시더라고요. 특수학급 선생님이 부족하다 자리가 없다 그렇게 거절할 거면서 왜 연락을 해서 상처를 주는지… 그런 상황에서 유치원을 지원하게 되었고, 상도유치원에 진짜 어렵게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자리가 너무 없기 때문에 경쟁률이 엄청 높았습니다. 거주지 우선으로 저희 아이가 상도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차별없이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친구들, 선생님, 학부모님들…그리고 하나하나 배우며 느리지만 늘어가는 우리 아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9월6일 밤 11시30분경 유치원 붕괴로 괴로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진짜 거짓이며 합성사진일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방송에 사고현장이 나오면서 심장이 터질듯하며 온몸이 떨리며 저 사고가 밤이 아니라 낮이었으면…끔찍했습니다. 혹여나 낮에 일어났다면 저희 아이는 빠져나올 수도 없었을거라는 생각을 하면 미안하고 가슴이 메어집니다.

유치원이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랍니다. 누리반 학급은 다른 통합유치원이라고 할 지라도 자리가 없습니다. 현재 임시적으로 상도초에서 수업을 한다고 하지만…저희 아이는 상도유치원이 사라진다면 그 좁은 배움의 길도 중단될 것입니다. 갈 곳을 잃을 것입니다. 갈 곳이 없습니다. 제발 상도유치원을 빠른 시일내로 그대로 옮겨주세요.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환경도.

왜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어른들이 만들어놓고 불편함은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건가요. 왜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을 아이들과 선생님과 부모들이 겪어야 하나요. 저 사고가 낮에 일어나서 인명피해가 일어났다고 해도 이렇게 해결하셨겠습니까?

9월10일 오후 7시 총회에 다녀와서 구청·시청에 큰 실망을 했습니다. 듣기 싫은 얼굴로 어쩔 수 없이 참석한 얼굴로 “검토하겠습니다. 회의해 보겠습니다. 절차가 있습니다” 그 절차 문에 그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똑같이 그 행동을 반복하는 분들을 보고… 남들이 한국에서 살기 싫다 한국에서 아이 키우기 싫다 라고 할 때도 크게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공감이 갑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저희 상도유치원을 빠르게 정상화 시켜주세요. 정말로 부탁드립니다. 대통령님을 만나뵙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나뵐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렇게 글이나마 전달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글·사진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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