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6월14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 병원을 찾아 격리병동 간호사와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년 만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돌아왔다.
질병관리본부(질본)는 9월8일 서울에 거주하는 61살 ㄱ씨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메르스 환자와 접촉한 사람은 총 438명으로 파악됐고, 이 중 21명이 밀접접촉자로 분류됐다.
한국에선 2015년 5월20일 첫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해 12월23일 보건 당국이 공식 종료를 선언할 때까지 총 186명이 메르스에 감염됐고, 39명이 메르스로 목숨을 잃었다. 감염환자 수보다 약 100배 많은 1만6천여 명이 메르스 환자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것으로 판단돼 격리(시설·자가) 조처됐다.
다행히 이번엔 9월13일까지 메르스 추가 감염자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메르스 평균 잠복기가 5일인 것을 고려하면 큰 고비는 넘겼다는 평가다. 하지만 최대 잠복기인 14일이 끝나는 9월22일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감염 경로가 확인되지 않은 것도 불안 요소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성일 교수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이번에는 첫 번째 환자가 빠르게 확진 판정을 받아서 추가 감염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없는 것도 아니다. 보건 당국이 파악하지 못한 사람 중에서 감염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지역사회의 대응 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촘촘하게 거른 밀접접촉자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했던 마르크스의 말이 떠올랐다. 한국 사회가 2015년의 메르스 사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2018년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비웃음을 받을 것이다. 현재까지 평가를 종합하면 절반의 개선과 절반의 자조가 뒤섞여 있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7개월 동안 취재해 기사를 썼던 기자의 시선으로 2015년과 2018년의 메르스를 비교·분석해보려 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초기에 보건 당국이 설정했던 밀접접촉자 분류 기준은 메르스 확산에 가장 큰 원인이 됐다.
당시 질본은 ‘환자와 신체적으로 접촉한 사람, 환자와 2m 이내에 1시간 이상 머문 사람’을 밀접접촉자 기준으로 제시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기준에 따른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역학조사 결과를 보면 30초가 안 되는 접촉으로도 감염된 환자가 있었다. ‘2m 이내 1시간 접촉’이라는 기준은 방역 당국의 뼈아픈 실수로 결론 났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보건 당국이 메르스 지침을 만들면서 메르스보다 위험성이 낮은 신종인플루엔자 지침에 따라 밀접접촉자 범위를 ‘2m 이내 1시간 이상 접촉한 사람’으로 좁게 설정했다”고 지적했다.
2017년 질본이 작성한 ‘메르스 대응 지침’을 보면, 밀접접촉자 분류 기준이 “환자와 2m 이내 머문 경우, 같은 방 또는 같은 공간에 머문 경우, 환자의 호흡기 분비물과 직접 접촉한 경우”로 수정돼 있다. 이번엔 좀더 넓은 의미로 확장해 방역망을 촘촘하게 짠 셈이다.
또 뚫린 검역망
질병관리본부 국립인천공항검역소 검역관들이 9월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두바이서 들어오는 입국자들의 체온을 확인하고 있다. 한겨레 사진
‘심한 설사와 탈수 증상으로 휠체어까지 탈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어떻게 공항 검역소를 통과했을까.’
2018년 메르스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갖는 가장 큰 의문점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전 인천공항 검역관은 42명으로 14명이 한 팀을 꾸려 3교대 근무를 했다. 정부는 2015년 말 15명 증원을 결정했고, 이후 제2여객터미널이 생기면서 검역관도 추가됐다. 수십억원을 들여 음압격리시설을 만들었고 전자검역대도 설치했다. 하지만 2017년 전국 공항과 항만 검역소를 통과한 인원은 4477만 명에 이른다. 전국 검역관 수는 340명인데, 감염자를 모두 걸러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무리 검역관 수를 늘리고 검역시설을 확충해도 ㄱ씨처럼 감염병 증상이 없는 잠복기에 들어오면 검역망은 뚫릴 수밖에 없다. ㄱ씨처럼 중동에서 들어오고 설사 증상이 심각했다면 감염병으로 의심해 격리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기침이나 발열이 없는 설사까지 감염병으로 의심해 검역소에서 걸러내자는 건 지나친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ㄱ씨의 증상이 메르스로 인한 설사인지 단순 장염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질본은 8월16일 쿠웨이트로 출국한 ㄱ씨가 28일부터 설사 증상이 나타나, 9월4일과 6일 쿠웨이트 현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단순 장염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ㄱ씨의 메르스 증상 발현 시점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전병률 차의학전문대학원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2009년 신종플루 때도 멕시코에 다녀온 수녀가 잠복기에 들어왔고, 2015년 메르스 때도 잠복기에 들어왔다. 증상이 발현됐을 때 본인이 신고하는 것과 추적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건 당국이 외국에 역학 전문가를 파견해 공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이 터지고 나가기보다는 미리 나가 있어야 한다. 일본 등 외국은 대사관에 보건 담당관이 나가서 선제적으로 대응하는데 한국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2015년 당시 메르스 역학조사를 담당했던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말이다. 정부는 2015년 이후 감염 위험 국가를 방문하는 국민 보호와 국내 전파 예방을 위해 국제보건의료 전문가를 파견할 계획을 세웠지만 예산 부족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컨트롤타워는 보였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9월9일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메르스 긴급 관계장관 회의’에서 국내 메르스 환자 발생을 언급하고 철저한 대응을 강조했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9월8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내린 시간이 오후 4시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흘 뒤인 11일 국무회의에서 “과거와 달리 관계 당국과 병원, 의료 관계자들이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처해 초기 대응이 비교적 잘됐다”고 평가한 뒤 보건 당국의 투명한 정보공개를 당부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컨트롤타워(지휘부)가 보이지 않았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박 전 대통령에게 5월26일 화요일 국무회의 때 메르스에 대해 서면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메르스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지 6일이 지난 뒤였다. 총리직은 공석이었다. 이완구 전 총리는 뇌물수수 혐의로 4월27일 사임한 상태였다. 총리 권한 대행이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6월2일에야 긴급 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했다. 이미 72명이 감염된 시점이었다.
이번엔 언론 공개도 신속했다. ㄱ씨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질본이 해당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시간이었다. 언론의 피드백도 적절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ㄱ씨가 이용한 뒤 택시에 탑승한 사람들은 언론과 전문가의 지적으로 관리 대상에 추가됐다”고 지적했다.
2015년엔 병원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방역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는 감염 경로 차단에 실패해놓고, 방역을 지연시키는 괴소문 유포자를 엄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빈축을 샀다. 감염병 사태에서는 정부가 ‘떠도는 이야기’ 중에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빠르게 판단해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네? 건국대 병원 전체를 폐쇄한다고요?”
2015년 6월23일 건국대 병원의 전체 폐쇄 사실을 확인하려고 서울시 보건국에 전화했는데 되레 질문이 돌아왔다. 질본이 건대 병원 전체 폐쇄 결정을 내렸는데 서울시는 모르고 있었다.
당시 서울시와 중앙정부는 메르스 대응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박원순 시장은 2015년 6월4일 심야 기자회견을 열어 “메르스에 감염된 삼성서울병원 의사(35번째 환자)가 개포동 주공아파트 재건축 총회 등에 참석해 시민 1600여 명과 접촉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35번째 환자가 접촉했다고 밝힌 1600명 중 추가 감염자는 나오지 않아 박 시장의 조처가 섣불렀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박 시장의 발표가 있은 뒤인 6월7일, 질본이 ‘메르스 환자 발생 병원명’ 전체를 공개했다. 박 시장이 중앙정부의 늑장 대응에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평가도 있었다.
반복된 지자체와의 불협화음
박 시장은 이번에도 중앙정부와 각을 세웠다. 9월9일 오후 서울시 메르스 대응 긴급대책회의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생중계했다. 질본과 조율되지 않은 내용이 여과 없이 대중에 공개됐다. 서울시 역학조사관은 “환자가 ‘호흡기 질환이나 발열이 없었다’고 했는데 아내에게는 ‘공항으로 마중 나올 때 마스크를 하고 오라’고 이야기했다. 아내가 자가용을 이용해 공항으로 왔는데 막상 병원으로 이동할 때 본인(ㄱ씨)은 리무진택시를 타고 따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분(ㄱ씨)이 진실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발언을 놓고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전병률 교수는 “박 시장의 발언은 질병을 관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정치적인 행위였다. 정제되지 않은 사실을 회의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페이스북으로 중계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서울시 대책회의에 참가한 한 보건 전문가는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추구하는 대응 수준이 달라 불협화음이 났다. 중앙정부가 애초에 제시했던 수동감시를 능동감시로 끌어올리는 수준에서 원만하게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감염병 사태 앞에서 대응 수준을 놓고 다투는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재호 〈한겨레21〉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