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한국) 국민의 개인청구권까지 소멸하지 않았다. (전범기업의) 소멸시효 주장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
2012년 5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처음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깜짝뉴스’였다.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비상이 걸렸다. 김앤장은 미쓰비시와 신일철주금을 위해 따로 꾸렸던 법률팀을 합쳐 ‘강제징용 재판 대응 티에프(TF)’를 만들었다. 이 티에프 회의에는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 등을 지낸 윤병세 당시 김앤장 고문도 참석했다고 한다. 티에프에선 ‘외교관계 악화 우려’를 포함한 대응 논리를 강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은 최근 이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듬해 3월 당시 윤 고문은 박근혜 정부의 첫 외교부 장관에 임명됐다. 검찰은 그가 김앤장 고문직에서 물러났지만 대응 논리는 그대로 외교부에 들고 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윤 장관 부임과 동시에 외교부는 입장을 ‘급선회’해 강제징용 판결 확정을 연기하고, 최종적으로 파기하는 방안을 양승태 사법부와 함께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김앤장을 통해 외교부 의견서를 대법원에 접수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 방안은 외교부와 협의를 거쳐 실현됐다.
검찰은 윤 전 장관이 김앤장과 외교부를 잇는 ‘창구’ 구실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재판거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외교부가 김앤장 티에프 소속 변호사와 교감한 정황도 외교부 압수문건을 통해 포착한 상태다. 검찰은 또 2013~2014년 행정처의 징용재판 개입 방안이 임종헌 당시 기획조정실장을 통해 전담 재판연구관에게 전달된 사실도 확인했다. 당시 대법원 근무 판사들은 검찰에서 “징용 관련 방안(지연·파기 등을 담은 문건 교환)은 공공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한편 사법농단 압수수색영장 기각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서, 13일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의 압수수색영장이 또다시 기각됐다. 신 전 부장은 2016년 김수천 부장판사 법조비리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행정처에 수사기밀을 ‘직보’하고, 행정처로부터 넘겨받은 비리 의혹 판사들의 친인척 정보를 영장판사들에게 넘긴 의혹을 받고 있다. 이언학 영장전담판사는 “기관 내부(법원-행정처) 정보 교환이고, 공무상 비밀 누설로 볼 수 없다” 등의 이유를 댔다고 한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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