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집 인근 놀이터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 재판의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까지 뒤집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진두지휘’한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차장)은 2015년 서울남부지법이 ‘한정위헌’(특정하게 법률을 해석하면 위헌) 취지로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심사해달라고 내린 결정을 취소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정황을 포착했다. 한 사립학교 의과대 교수는 “공중보건의 기간을 교직원 재직기간으로 합산하지 않도록 해석하는 법 조항은 위법하다”며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조항에 대해 한정위헌 취지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고, 그해 4월8일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당사자에게도 결정 내용이 통보됐지만, 닷새 뒤인 4월13일 재판부는 ‘단순위헌’ 취지로 제청하기로 판단을 바꾼다.
검찰은 이 과정에 법원행정처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 위헌제청사건의 경우 대법원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공문이 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행정처 심의관에 의해 한정위헌 제청 사실이 행정처에 보고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주관하는 회의에서 이 사안이 논의됐고, 양승태 대법원장의 ‘결단’으로 재판 개입이 이뤄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행정처의 요구로 결정을 직권 취소했고, 당사자에게도 직접 연락했다고 한다.
검찰은 또 이같은 과정을 은폐하기 위해 전산정보국까지 동원된 정황도 포착했다. 애초의 한정위헌 제청 결정과 취소 결정은 법원 내부전산망에서 열람되지 않도록 조처했다는 것이다. 실제 현재 법원 내부망에서 마지막 ‘위헌’ 결정문만 열람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같은 노골적 ‘재판개입’이 헌재와의 위상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정위헌은 ‘법률을 특정한 방향으로 해석하면 위헌이 된다’는 것인데, 대법원은 헌법 위반 여부만 심사해야 할 헌재가 법률 해석 권한까지 침탈한다며 불편함을 표해왔다.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또 2013~14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재상고심을 개입하는 법원행정처 계획이 실제 재판연구관실에 전달된 정황을 포착했다. 당시 해당 사건을 담당하던 전속연구관에게 전달된 문건 중에는 ‘재판을 지연해 외교부에 절차적 만족감을 준다’, ‘국외송달을 핑계로 자연스럽게 심리불속행(사건 접수일로부터 4개월) 기간을 넘긴다’ 등 내용이 담긴 사법정책실 문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5월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뒤 같은 취지 하급심 판단을 거쳐 2013년 8~9월 재상고된 이 사건은 5년째 대법원에 잠들어 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