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입국한 예멘 출신 자말씨의 가족이 임시로 마련한 거처에 한글을 공부하기 위한 종이를 붙여놓았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제주도에 500여명의 예멘인들이 입국한 뒤, ‘난민’은 한국 사회 가장 논쟁적인 화두가 됐다. 하지만 정작 어떤 시민들이 ‘난민’ 논란의 어느 지점에서 인도주의적 수용에 공감하거나 반대하는지 구체적인 여론 지형이 드러난 적은 없었다. <한겨레>가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 여론조사기관 타임리서치와 함께 지난달 26~27일 이틀 간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숙의형 웹조사를 실시한 결과, ‘블루칼라·50대·진보’가 가장 난민에 포용적인 입장을 보였다. 난민을 격리하는 등 제한적 접근에 찬성한 응답자가 76.7%로 포용적 접근(23.3%)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응답자들에게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논리를 6가지를 접하게 한 후, 입장의 변화를 살펴보았으나 여론 지형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다. 제한적 접근에 찬성한 응답자가 74.1%로 약간 줄고, 포용적 접근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25.5%로 조금 늘었다. 다만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다소 포용적’인 입장이 118명에서 137명으로 가장 많이 늘었고, 매우 포용/다소 제한/매우 제한은 모두 조금씩 줄었다. 또 전체응답자 700명 중 90명(12.8%)이 숙의과정에서 입장변화를 보였다. ‘숙의’를 거치면서 응답자들의 생각이 보다 온건해진 경향을 보인 것이다.
먼저 난민에 가장 포용적인 입장을 보인 계층은 블루칼라(생산·서비스직), 50대, 진보적 성향인 계층으로 조사됐다. 학생의 12%, 주부 가운데 23%만 난민에 대한 포용적 접근에 공감한 반면, 생산·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이들은 30.5%가 포용적 태도를 보였다. 연령대로는 20·30대(11.9%·17.6%) 청년층보다 50대(37%) 장년층에서 훨씬 포용적 접근에 지지한다는 응답이 높았다. 화이트칼라, 젊은이들이 인도주의적 관점을 지킬 것이란 고정관념과 배치되는 결과다. 타임리서치의 박해성 대표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외국인 노동자를 접할 기회가 많은 생산·서비스직 종사자들이 난민 문제에 포용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난민에 대한 전반적인 반대 여론이 실체와 상관없이 형성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난민 이슈와 별개로 ’해외 원조’ 필요성에는 응답자 다수가 공감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9.9%가 공감을 표시했다. 특히 최종응답에서 ‘다소 제한적’이라 응답한 이들도 71%가 지원원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시했다.
응답자들은 어떤 반대 논리에 가장 흔들렸을까? 응답자들은 주로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반대 논리에 입장을 바꿨던 것으로 나타났다. 포용 논리에 공감을 표했던 사람들은 ‘경제적 이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을 이미 다수 받아들이고 있는 만큼 난민을 수용할 이유가 없다’는 제한 논리에 가장 크게 흔들렸다(56.8%). ‘타문화권 난민의 포용적인 수용이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논리가 49.3%, ‘난민신청자 등의 유입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논리가 47.6%로 그 뒤를 따랐다. 조정현 한국외대 교수(법학)는 “법적·사회적 의미가 전혀 다른 난민과 경제적 이주민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으로 함께 묶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난민 수용에 배타적인 입장을 가진 응답자들의 생각을 상대적으로 많이 흔든 포용논리는 두 가지였다. ‘난민신청자 등 외국인 유입이 피할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인 만큼 외국인과의 공존을 위한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29.6%)와 ‘한국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과거 다른 국가로 이주한 난민의 역사가 있다’는 논리(28.5%)다. 난민의 문제를 더 이상 억지로 피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과, 한때 한국인도 난민이었다는 감정적 호소에 마음이 흔들린 셈이다.
반면 ‘통계와 인도주의’를 통한 설득은 대부분 80% 이상의 비공감을 얻는 등 거의 효과가 없었다. 통계적 수치를 들어 통념을 반박하거나, 인도주의적 의무에 호소하는 당위적인 접근들은 배타적 응답자들의 생각을 거의 바꾸지 못한 것이다.
조정현 교수는 “외국인이 국내로 유입되면 사회갈등이 유발되고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공포는 현실적인 공포라기보다는 ‘상상의 공포’에 기반한 것”이라며 “정부는 난민 반대 여론에 편승할 게 아니라 불안감을 잠재울 ‘시스템’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고 짚었다. ‘공공의창’의 최정묵 간사는 “단순한 찬반여론을 넘어 다원화된 여론을 고려한 갈등관리와 정책추진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6~27일 이틀간 전국 만19세 이상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숙의형 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대상은 지역·연령·성별 유권자구성비에 따라 층화표본추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최대 허용 오차가 플러스 마이너스 3.7%포인트다.
이번 숙의형 웹조사를 진행한 ‘공공의창’은 리얼미터, 리서치뷰, 우리리서치, 리서치DNA, 조원씨앤아이, 코리아스픽스, 타임리서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피플네트웍스리서치, 서던포스트, 세종리서치, 현대성연구소,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13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 분석기관이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2016년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할 수 있는 방향의 조사를 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아 공공의창을 출범시켰다. 정부나 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고, 비용은 자체 조달해 공익성 높은 조사를 실시한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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