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 전시관 안에 법관의 양심과 독립 등을 명시한 헌법 제103조가 적혀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대법원이 주유엔(UN)대표부에 법관을 2년간 파견하는 절차를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주유엔대표부는 양승태 사법부와 박근혜 청와대가 일제강점기 ‘징용’ 소송을 미루는 대가로 얻어냈다는 의혹이 제기된 자리다.
대법원은 오는 27일 주유엔대표부에 파견될 예정이었던 정은영 서울서부지법 판사를 지난 22일 부산지법 판사로 전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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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 관계자는 “후보자를 내정했지만, 이후 파견절차 진행을 보류해달라는 외교부 의사를 전달받았다”며 “행정처도 외교부에 후보자 추천서를 송부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정 판사를 오는 27일 부산지법으로 전보할 예정이다.
대법원은 2016년 2월 파견됐다가 오는 8월 복귀하는 양재호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 후임 인사로 정 판사를 주유엔대표부에 파견한다고 지난달 26일 발표한 바 있다. 인사 발령은 양승태 사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 결론을 미루는 대가로 박근혜 청와대와 외교부로부터 법관의 해외 공관 파견 자리를 얻어냈다는 의혹이 한참 제기된 상황에서 이뤄졌다. 양승태 행정처의 기획조정실·사법정책실·사법지원실 등이 ‘재판거래’에 총동원된 정황도 드러난 이후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재판거래’ 대가로 지목된 해외 파견을 지속하기로 결정하자, 법원 안팎에서 거센 비판이 나왔다. 애초 대법원은 “파견 중단을 고려하거나 파견의 적절성 여부를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징용 ‘재판거래’ 정황이 짙어지고, 외교부도 난색을 표하자 대법원도 더는 파견을 강행할 명분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도 ‘재판거래’의 카운터파트너로 지목돼 지난 2일 압수수색까지 당한 터라 파견절차 진행에 부담감을 느꼈다고 한다.
한편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사법부가 전면에 나서 ‘징용 재판거래’를 모의한 전모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013년 12월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만나 재판 결론 지연을 요구한 데 이어, 2014년 10월에는 박병대 당시 행정처장을 만나 후속소송 현황까지 점검하며, 일본 전범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2012년 판결의 파기 등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징용소송 심리불속행 기각 기간(2013년 12월9일)이 지난 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수차례 걸쳐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법관 해외 파견을 ‘직접’ 요청한 사실도 확인됐다. 2016년 9월에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과 직접 접촉해, 외교부 의견서 제출을 통한 징용소송의 전원합의체 회부 및 파기 계획까지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달 27일 징용 재판을 5년 만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면서 “2016년 11월부터 전합 회부를 검토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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