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차관급인 고법부장급 고위법관 첫 피의자 소환이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일선 법원 판사들이 검찰의 주요 수사 내용을 전방위적으로 법원행정처에 ‘직보’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판사의 비리 혐의와 관련한 검찰 수사 내용도 예외 없이 보고됐다. 하지만 법원은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압수수색영장을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 “자료가 있는지 의문이다” 등의 이유로 기각하고 있다. 부적절한 예단을 드러낸 것이며 법원의 치부를 감추려는 노골적 수사 방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23일 나아무개 대구지법 포항지원 부장판사 등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나 판사는 2016년 서울서부지법 기획법관으로 일하면서 법원 집행관들 비리 관련 검찰 수사기록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게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를 받는다. 검찰은 나 판사가 계좌추적 상황과 참고인 진술 내용 등을 보고한 정황도 포착했다. 나 판사는 2014년 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일하면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실과 만난 뒤 “(상고법원에 미온적인) 국민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문건을 작성한 인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원은 같은 혐의를 받는 고법 부장판사 등 5명의 압수수색영장은 기각했다. 더구나 이들이 보고한 사건은 법원 소속 집행관이 아닌 현직 판사들의 비리와 관련한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광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01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일하면서 김수천 부장판사 등이 연루된 법조비리 수사자료를 유출한 의혹을 받는다. 신 판사는 정운호씨(뇌물공여자) 등의 계좌 추적 내역, 측근의 검찰 진술, 같은 의혹을 받던 판사 명단과 동향을 수차례 임 전 차장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전임자인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검찰 수사가 다른 판사로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보고서를 행정처에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압수수색을 통해 (검찰이 확보한 것) 이상의 자료를 취득할 수 있는지 의문”, “수사 진행 상황을 전달한 것이 공무상 비밀누설인지 의문”, “임의수사 미진행”, “(압수수색 장소에) 관련 자료가 있다는 개연성 부족” 등의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비슷한 혐의에 대해 법원이 다른 잣대를 적용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 부장판사는 “기획법관인 나 판사와 달리, 수석부장이던 신 판사는 법원 예규상 어느 정도 수사 정보를 행정처에 보고할 권한이 있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수사 정보를 보고하는) 내부 예규를 근거로 부적절한 행위를 정당화한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 상대 소송과 관련한 ‘재판 거래’ 의혹 수사에도 고삐를 죄고 있다. 특히 검찰은 소송 당사자도 아닌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 데 주목하고 있다. 외교부가 제시한 ‘새로운 쟁점’을 빌미로 징용 소송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해 파기하기 위한 명분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2015년 법원행정처가 청와대를 통해 수차례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독촉’하고, 2016년 초 박근혜 대통령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직접 “왜 의견서 제출이 되지 않느냐”고 ‘질책’한 정황도 포착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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