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 동원 피해자 이춘식(98)씨가 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열린 ‘양승태 대법 재판거래 규탄 및 일제 강제동원 피해 소송 전원합의체 심리재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98)씨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연신 눈물을 흘렸다. “좋은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목이 막혀서, 눈물이 흘러서 말이 안 나온다. 나 죽기 전에 빨리 해결해주시면 마음이 기쁠 텐데….”
1941년 징용된 이씨는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옛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주식회사) 가마이시제철소의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을 해야 했다. 월급은커녕 밥도 부족했다. 억울한 마음을 담아 같은 처지의 징용자 3명과 함께 2005년 일본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2심은 패소했지만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2012년 5월 이씨의 손을 들어주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그 뒤 1억원과 그 이자를 지급하라는 서울고법의 판결이 나왔지만, 다시 사건을 받아든 대법원은 5년 넘게 판결을 뭉개고 있다. 최근 그 5년의 비밀이 풀리고 있다. 법관의 해외공관 파견 및 상고법원 도입 로비가 절실했던 법원이 박근혜 정부가 부담스러워했던 징용 판결을 뒤집으려고 재판 지연을 거듭해 온 정황이 검찰 수사로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뭉개던 대법원은 지난 7월에야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이씨는 “대법원이 썩었다. 어떻게 판결을 뒤집어엎으려 할 수 있나. 이번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지어서 결과를 알려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날 이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연 참가자들은 “양승태 대법원장 당시 임명된 재판관들에게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할 수 없으니 즉시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씨와 이씨의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 등은 ‘대법관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문을 대법원 민원실에 제출했다. 이씨는 “나는 (법원이) 해결해주는 거 보려고 살고 있었는데 마음이 나쁘다”며 속상해하다가도, 기자회견문을 건네는 장면을 보며 “고맙다. 마음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재판은 공정한 것만큼이나 공정해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이 사건과 관련된 대법관들이 모두 사퇴하거나 최소한 재판 절차를 투명하게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