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건물 오른쪽이 법원행정처. 한겨레 자료 사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의 사찰 대상이 됐던 차성안 판사(41·사법연수원 35기)가 2015년 9월 주간 <시사인>에 기고한 글을 두고, 법원행정처의 전·현직 심의관들이 글의 의도와 파장, 대응방안 등을 집중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찾아내고도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던 문건 3개 가운데 ‘(150921)차성안’ 문건을 10일 오후 공개했다.
행정처는 지난달 31일 행정처 문건 196개를 추가로 공개하면서도 ‘차성안’ 파일 등 3개 문건은 “명예훼손 우려가 있고 개인정보 및 사생활 비밀 등의 과도한 침해를 막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행정처는 지난 3일 당사자인 차 판사에게 비실명 처리된 ‘차성안’ 문건을 전달한 데 이어, 차 판사의 요청에 따라 10일 오후 법원 내부통신망에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행정처는 그러나 2017년 3월8일 작성된 '이○○판사 관련 정리'와 2016년 7월27일 작성된 '제20대 국회의원 분석’ 문건은, 해당 법관이 행정처에 “문서파일 내용의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거나 국회의원 등의 공개 요구가 없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이날 공개된 ‘(150921)차성안’ 문건은 차 판사가 2015년 9월부터 주간 <시사인>에 ‘하급심을 강화해 이른바 5분 재판을 줄이자’는 내용으로 여섯 차례 기고한 글을 두고, 4명의 전·현직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행정처의 대응책에 대해 밝힌 의견을 모은 것이다. 이들의 논의 내용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컴퓨터에서 발견된 ‘차성안 시사인 투고 관련 대응방안(대외비)’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문건은 ‘차 판사의 기고를 <시사인>이 악용한다’는 등 특정 언론을 적대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건은 “<시사인>은 기본적으로 현 대법원은 보수화되어 있다고 보고, 대법원과 대립각을 세우는 입장. 중립적 국가기관으로 보지 않고, 보수적 정권과 등치시키고 있음”이라고 분석하면서, “(시사인은 차 판사가 주장하는) 법관증원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상고법원을 망치려는 의도
. (차 판사의 기고는) 시사인의 논리에 이용당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한 심의관은 “시사인의 왜곡된 편집은 ‘사법부의 본류’를 공격하고 싶은 방향”이라며 “본인(차 판사)의 의도와는 달리 왜곡, 편집돼 악용될 가능성”을 거론했다.
문건에 나온 전·현직 심의관들은 차 판사의 개인 성향과 상황 등을 분석하면서, 차 판사를 설득·회유할 방안도 검토했다. 한 심의관은 “(차 판사가 당시 근무지인) 군산에 혼자 있음”이라며 “차성안 판사가 친한 사람들 파악”을 주문했다. 다른 심의관은 “(차 판사가) 의지가 강건한 사람”이라며 “친한 사람으로는 부족하고, 차 판사가 존경하는 사람”을 통해 “차 판사와 접촉”할 것을 주문했다. 또 다른 심의관은 “지원장님이 말씀하시는 방안”을 언급하며 ○○지원장, ○○○ 부장판사 등을 거명했다.
이들 전·현직 심의관들은 차 판사의 기고가 법관윤리강령이나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권고의견, 법관의 외부기고 가이드라인 등에 저촉됐을 가능성도 검토했다. 그러나 이들 심의관은 차 판사를 징계하는 등 직접 대응에 나서는 것은 역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무시 전략’ 또는 ‘유연한 대응’을 주문했다.
한 심의관은 “잘못 건드리면 역효과가 크게 난다, 놔두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다른 심의관은 “징계하면 자꾸 주목하게 만들어주는 것일 뿐이다. 득실을 고려하면 징계의 실익이 없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심의관도 “중성화를 시키기 위해 반대되는 글을 쓰면 오히려 논쟁이 격화된다. 내버려두면 사그라든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한 심의관은 “판사들의 과로가 심각한 문제라는 데 대해선 차 판사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근소하게 다수”라며 “판사들이 공감하는 부분은 (행정처가)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동조”해 “일선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제안이 채택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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