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9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근처에서 열린 ‘2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참가자들이 경찰의 성차별 편파수사를 비판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4일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네 번째 시위가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다. 36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4만5000여명(주최 쪽 추산)의 여성들은 광화문광장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며 ‘몰래카메라’ 가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와 처벌을 요구했다. 지난달 열린 3차 시위에는 전국에서 버스까지 대절해 무려 6만여명이 모이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 더운 날, 이토록 많은 여성들이 전국에서 뜨거운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일까?
시위 참여자는 수만 명이지만 막상 이들의 생생한 의견은 밖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10대~30대 초반의 여성들인 것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정작 이들이 누구인지, 무슨 생각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인지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아 왔다. 시위를 주최하는 다음 포털 카페 ‘불편한 용기’ 쪽이 현장 참여자 인터뷰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최 쪽은 지난 6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시위 전체를 매도하는 잘못된 기사가 나갈까 봐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관련 기사: “왜 많은 여성이 모이나?” 혜화역 시위 운영진에게 물었다)
시위 주최 쪽이 느끼는 두려움의 근원은 이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왜곡된 시선’이다. 이미 일부 누리꾼들이 이들을 두고 ‘정신병자’ ‘여자 일베’ ‘어이없는 페미’ 등의 혐오 표현을 쓰고 있다. 주최 쪽은 이런 상황에서 참여자 개인의 의견이 ‘오해의 여지’를 담고 밖으로 표출됐을 때 시위의 의미 자체가 왜곡되는 현상이 더욱 심화할 것을 우려했다.
그렇다고 해서 시위 참여자들의 개별적 목소리를 틀어막는 것만이 정답일까? 시위 참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밖으로 전달되지 않는 한 이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또 다른 억측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이에 <한겨레>는 7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시위 참여자 서유주(가명·22) 씨를 인터뷰해 시위에 참여한 이유와 시위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10대 시절 국외로 나가 현재 국외의 한 대학교에 재학중이다. 대학에서는 여성학 강의를 들었다고 했다.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온 서씨는 6월9일과 8월4일 두 차례에 걸쳐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
8월4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4차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한국에서 겪는 몰래카메라에 대한 공포감의 심각성에 대해서 말하면서 “여성들이 느끼는 상시적인 공포와 왜곡된 사회 구조에 대해 여성 스스로가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어 “다음 세대 여성들에게는 이러한 사회 구조를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시위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생물학적 여성을 제외한 모든 대상에 대한 혐오를 표방하고 있는 커뮤니티 ‘워마드’(WOMAD)의 극단적 행위에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여성이나 소수자를 상대로 한 극단적 행위가 ‘워마드’보다 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의 행태에 대해서는 문제점이 제대로 이슈화되지 않는 ‘이중 잣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개인적 의견이고 이 의견이 모든 페미니스트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꼭 써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하는 일문일답.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처음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아는 언니가 시위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트위터를 통해서 정보를 찾아봤고 언니와 함께 시위에 참여했다.”
-왜 시위에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처음 시위가 이뤄진 배경이 (홍대 누드모델 불법 촬영 사건) ‘편파수사’ 때문이다. 나도 편파수사라고 생각했다. 또 한국에 올 때마다 몰카에 대한 두려움을 항상 안고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런 걱정 없이 편하게 다녔던 것과 대비되면서 (한국 상황에 대한) 두려움, 분노 이런 게 컸던 것 같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 추모행동 행사가 열린 지난해 5월17일 저녁 참가자들이 강남역 주변 거리에서 침묵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에서 느끼는 몰카에 대한 공포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여자친구들끼리 있을 때 누군가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몰카 있는 거 아냐? 빨리 나와’라고 한다. 특히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상점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는 화장실은 친구들과 같이 가거나 혹은 아예 안 가는 경우가 많다. 이 사건이 터졌을 때 진짜로 ’저게 나였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몰카를 4년 동안 2테라바이트 넘게 찍었다는 뉴스도 나왔는데 그중에 내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공공화장실에 구멍 뚫린 것도 흔하니까. 이미 찍혔겠거니 하는 자포자기 심정도 있다. 여자친구들끼리 놀러가서 숙박업소를 이용할 때도 혹시 몰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한다. 몰카에 대한 얘기가 안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 워터파크 같은 곳에 안 간지는 오래 됐다.”
-그동안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경험한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에는 어떤 것이 있나?
“아직 사회생활이나 결혼을 안 해봐서 경력 단절이나 결혼 뒤 가정에서 일어나는 성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그냥 어렸을 때부터 듣는 그런 말들이 있다. 학교나 사회나 가정에서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것. 조금 보수적인 학교를 다녔는데 학생 회장은 무조건 남자, 부회장은 여자였다. 체육대회를 해도 여자는 줄넘기, 남자들은 운동장 전체를 사용하는 메인 종목을 한다. 그런 불합리한 것을 보고 자라면서도 ‘이것이 성차별이야’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 했다. 부당하다는 것만 느끼다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페미니즘이 대중화되고 대학교에서 여성학 강의를 들으면서 이것이 성차별이고 잘못됐다는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게 됐다. 특히 강남역 사건은 스스로도 생각을 정리해보는 계기가 됐다.”
-홍대 누드모델 불법 촬영 사건의 수사가 ‘편파수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가 굉장히 많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이를 경범죄 취급하다시피하고 벌금 5만원 아니면 재판에 가서도 집행유예로 허무하게 끝난 걸 많이 봤다. 그런데 이 건은 수사 자체가 엄청 크고 최초로 포토라인까지 섰다. 4년 동안 모텔에 몰카를 설치해서 2테라바이트 넘게 영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람에 대한 수사 진행상황도 잘 모르겠는데, 이 사람(홍대 촬영자)은 그걸 워마드 게시판에 올렸다는 점,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찍어서 올리니까 경찰이 바로 이렇게 했다는 것이 (편파수사로 느껴졌다). 일베에는 사촌동생 몰카다 뭐다 해서 일상 몰카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이런 것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서) 이번 건은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몰카 수사와는 다르다고 느꼈다.”
-가해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건 자체가 이미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속한 수사가 이뤄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 홍대 몰카 사건이 아이콘적인 사건이긴 했다. 그러나 일베에 올라오는 일반 여성 몰카나 다른 남초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몰카를 정말 많이 접했는데 그게 어느 지점에서 (홍대 사건과) 다른지 모르겠다. 그런 몰카들은 이슈가 되지 않았는데 왜 이 사건만 이슈가 되는 걸까? 애초에 ‘워마드’에 올라왔기 때문에, 여성이 범인이기 때문에 이슈가 된 것이 아닐까? 이슈가 되는 과정 자체의 불합리함이 있는 것 같다.”
-워마드 게시판에 올라오는 극단적 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워마드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워마드 이용자도 아니고 찾아보지도 않아서 그들의 정확한 의도는 파악하지 못 하겠다. 그러나 메갈이나 워마드의 시작점은 미러링이었다. 그동안 남자들이 여성을 상대로 어떤 행태를 저질렀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원본을 ‘행위’가 아닌 ‘글’의 방식으로 패러디하는 미러링은 어느 정도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너무 많이 나가서 실제로 수컷 고양이를 학대한다거나 그런 ‘행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워마드에 대한 비판은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굉장히 많다. 워마드가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가는 것도 또다른 차별이고 소수자들과 함께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워마드에 대한 비판을 꾸준히 한다. 그럼에도 ‘왜 일베는 비판하지 않고 워마드한테만 그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온라인상의 댓글이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워마드가 하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두고 페미니즘을 싸잡아서 욕하는 도구로 쓰기 때문이다. 이들은 (워마드가 이러니까) ‘페미니즘은 모두 정신병’이라고 생각한다.”
-워마드의 극단적 행위와 집회 참여자들을 동일시하는 시각은 왜 생겨났다고 보나?
“그런 시각의 바탕에는 남성으로서 누려온 지위와 권리, 특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자기는 그런 걸 누린 적이 없다고 하지만 스스로는 못 느껴도 그것을 누려온 사람들이 그걸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아닐까. 혹은 새로운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갖는 것 같다.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것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아니니 그것을 적대시하고 악마화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남성의 경우에는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공감하는 학습이 전혀 안 돼 있으니까. 어느 칼럼 중에 한국 사회는 남성을 성숙한 시민으로 길러내는데 실패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무지해서 그런 게 아닐까. 진짜 그냥 무식하다는 게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 무지하고 약자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평등이나 성차별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하고 성차별적 사회구조 안에서 자기가 학습해온 대로 생각하고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그렇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집회 참여자를 ‘생물학적 여성’으로만 제한하는 것은 어떻게 보나? 성소수자도 있고 ‘편파수사’ 의견에 동의하는 남성도 있지 않을까?
“페미니즘 집단 내에서도 논쟁이 많이 일어나는 부분 중의 하나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제한을 두는 것은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성차별이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젠더를 이분법적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무너뜨려야 할 것이 바로 이러한 성별 이분법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시위 참여자에 대한 성별 제한을 두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공고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시위 현장에서 위협을 가하려는 남성이나 유튜브로 생중계하면서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제한이 없어지면 시위에 동의하는 사람도 오겠지만 분탕치고 실질적으로 해를 가하는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위 현장에서 위협을 가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보기 전에는 ‘왜 저런 제한을 뒀을까’ 생각했는데 보고 나니 ‘이런 것 때문이구나’ ‘아직 우리나라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난 6월9일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홍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2차 집회에 참여한 한 여성이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취지로 “우리의 일상은 포르노가 아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집회 운영진은 현장에서 참여자들의 인터뷰를 제한한다. 왜 그렇다고 보나?
“가장 큰 이유는 워낙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참가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저처럼 성소수자나 트랜스젠더, 시위에 동의하는 남성도 같이 연대해서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또 워마드를 하는 아주 극단적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언론 인터뷰를 하면 그 사람의 의견이 전체 의견으로 매도될 수 있다. 페미니즘을 뭉뚱그려서 예민하고 정신병자 같은 집단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한 사람의 의견이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다. 방송의 경우에는 외모 품평이나 신상 털이에 대한 걱정도 있다.”
-혜화역 3차 시위에서 나온 ‘문재인 재기해’ 구호가 논란이 됐다. 이 구호가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그게 7월7일 시위 때 처음 등장한 거다. 저는 이 시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직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이 시위를 언급하면서 ‘여성들의 원한’이라는 워딩을 사용해서 확 불이 붙은 것 같다. ‘원한? (여성들의 문제의식을) 단순히 원한으로 취급하는 건가?’ 그런 것이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처럼 여성혐오적 행태를 보였던 인사에 대해 ‘첫눈이 올때까지 있어달라’거나 그런 청와대의 행동도 그렇고. 이게 정말 심각한 문제고 여성한테는 생존이 달린 문제인데 이런 것에 대해 (청와대가) 공감을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재기해란 말이 성재기씨의 자살한 것을 두고 한 말이긴 한데, 이걸 자주 쓰게 되면 가볍게 쓰게 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 의미가 희석돼 쓰이기 때문에 진짜 ‘자살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본다.
이 구호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갈등이 있다. 아직 생각이 정립되지 않았다. 워마드처럼 아예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니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구호라든지 이런 것을 기성 세대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극단적이라는 이유로 막아버리기 시작하면 우리가 해서는 안 될 게 더욱 늘어날 것 같기도 하다.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아직 거기에 대해서는 답을 못 내리겠다.”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받으면서도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이 폭염 속에서 광장에 나오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시위에 나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다양하지만 굳이 특징짓자면 주로 20대 여성들이다.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으로 활동하다보면 이들이 과연 현실에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실에서 여자친구들끼리 대화를 할 때도 페미니즘은 민감한 주제다보니 미리 의견을 공감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시위에서는 현실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한 번 가면 계속 가게 되는 것 같다.”
지난 6월9일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홍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2차 집회에 참여한 여성 6명이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의미로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함께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이들인가?
“정말 다양하다. 거의 대부분 젊은 여성이지만 간혹 40대 후반이나 50대로 보이는 분들도 있다. 탈코르셋으로 보이는 복장을 하거나 삭발 혹은 짧은 머리에 꾸미지 않고 오는 분들도 많다. 또 화장도 하고 원피스를 입고 오는 사람도 있다. 생각보다 다양하다.”
-집회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분노는 어디를 향하고 있나? 남성인가, 정부인가, 사회 구조인가, 기성세대인가?
“모두가 해당되는 것 같다. 한국 사회에 여성운동이 있다고 해도 정부나 국회 안에 온전히 여성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도 국회도 모두 남성 중심적인 조직이다. 일반 남성들은 딱히 이런 문제를 심각한 문제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문제 제기하는 사람을 ‘민감한 사람’이라고 취급한다. 여성 문제에 공감하지 못 하는 일반 남성들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몰카 가해자, 이용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 하는 사회 구조, 제도에 대한 불만도 있다.”
-부모 세대의 한 전문가는 이 시위에는 '기존의 모든 권위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
▶관련기사: 혜화역 시위, 그들의 언어는 왜 낯설고 불편한가) 예를 들어, “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만든 기성세대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교수, 법조인 당신들이 이 상황에서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나?” 혹은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공자왈 맹자왈 하는 당신들 말을 아직도 믿어야 하나?”라는 강한 불신의 정서라는 것이다. 동의하나?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남성중심적 권위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있다. 시위에서 외치는 구호나 개인 발언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게 그런 거다. 다음 세대 여성한테 이런 고통 물려주지 말자는 말을 정말 많이 한다. 우리가 바꾸자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구조를 만든) 기성 세대에 대한 불신 분노가 없다고 볼 수 없다.”
-7월7일 혜화역에서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광화문에서는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집회가 각각 열렸다. 낙태죄 폐지 집회는 여성운동 단체에서 주최했는데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른 것인가?
“‘불법촬영 편파수사’ 시위에서도 낙태죄 폐지 팻말을 적어오는 사람도 많다. 낙태죄 폐지 집회는 원래 광화문에서 계속 해온 것이었다. 그쪽은 생물학적 여성으로 참가 제한을 두는 것도 없고 운영진 스탠스 자체도 더 포용적이다. 개인적으로 기존 여성운동 세력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다. 다만 갈래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서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아직 덜 돼 있고 편파수사 시위는 그런 면에서 참가자를 ‘생물학적 여성’으로만 제한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개선과 페미니즘이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위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사실 당장 뭐가 바뀔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그렇지만 여성들도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경험이 여성들 사이에서 공유가 됐으면 좋겠다. 여성들 스스로 그걸 깨닫고 시위 참여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나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시위를 하면서 구조적인 개혁 등이 당장은 이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기성세대나 정부가 ‘진짜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응답해줬으면 좋겠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