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로 자사 소유 원양어선에 불을 지른 뒤 실화로 속여 화재보험금 67억원을 타낸 원양어선 업체 일당이 검거됐다. 단건으로 발생한 보험사기 금액으로는 가장 큰 금액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2016년 11월2일 고향 후배를 시켜 자사 4천톤급 원양어선에 불을 지르게 한 뒤, 보험회사로부터 67억원을 편취한 원양어선업체 대표이사 ㄱ(78)씨를 구속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8일 밝혔다. ㄱ씨는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를 받는다. ㄱ씨와 공모한 계열사 전 대표 김아무개(72)씨와 이들의 지시를 받아 선박에 불을 지른 고향후배 이아무개(60)씨도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대표이사 ㄱ씨는 2013년 6월 4천톤급 원양어선을 매입한 뒤 선박 국적을 바누아투공화국으로 변경해 조업하려고 했으나, 각국의 자국어장 보호정책과 어황부진 등으로 매년 6억원씩 적자가 발생하자 화재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이같은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ㄱ씨는 화재보험금으로 냉동공장 설립자금을 마련해 공동 운영하거나, 성공 사례비로 보험금의 10%를 준다는 식으로 계열사 전 대표, 고향후배를 범행에 가담시켰다고 한다. 후배 이씨는 지난 2016년 10월 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항구에 정착해있던 해당 선박에 들어가 선박 구조를 파악하는 등 범행을 준비했고, 열흘 뒤인 2016년 11월1일 방화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범행에 앞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철저하게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당일 새벽 5시께 선박 내부 어창실에 인화물질이 묻은 헝겊을 깐 뒤, 일부러 양초 3개를 1개 묶음으로 만들어 불을 붙였다. 양초가 모두 탄 5시간 뒤인 오전 10시께 배에 불이 나도록 방화 시간을 늦춘 것이다. 그사이 이씨는 공항으로 이동해 오전 10시30분 남아공에서 한국으로 출국하는 항공편에 타 알리바이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뒤 대표이사 ㄱ씨는 보험사로부터 2017년 1~7월 7차례에 걸쳐 화재보험금 67억원을 받아 회사 운영자금으로 사용했고, 이중 1억6800만원을 이씨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건넸다고 한다.
완전범죄로 끝날 듯했던 이들의 범행은 방화를 의심한 보험사의 자체 조사와 해당 선박 직원들의 제보 등으로 드러났다. 보험사쪽은 “불이 나기 6개월 전인 2016년 5월부터 해당 업체에서 보험가입액을 100만달러에서 600만달러로 증액했다”며 “불이 난 장소는 조업한 물고기를 보관하는 어창실인데, 조업도 하지 않아 비어있는 어창실에서 화재가 나 수상하게 여겼다”고 밝혔다. 경찰은 대표의 차명계좌로 이씨에게 입금된 수고비를 확인했고, 곧바로 이씨를 추궁해 방화 사실을 자백받았다고 한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범행에 공모한 회사 관계자 2명, 화재 조사 당시 허위 진술을 받아 범행에 가담한 손해사정사 1명 등 5명도 불구속 기소됐다.
경찰은 “해당 원양어선 업체는 방화가 의심된다 하더라도 명백한 증거가 없을 경우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해야만 하고, 선박이 외국 국적인 탓에 사고 사실을 국내 수사기관에 통보해야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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