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내부의 복잡한 기류. 계파별 온도차. 친노 대 비노”, “야당 내 분위기에 대한 냉철한 점검과 계파별 온도차를 이용한 투 트랙 전략 필요”.
정당 내부의 전략보고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2015년 8월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유죄를 확정하는 판결을 내놓은 직후, 행정처는 ‘한명숙 사건 대법원 판결 이후 정국 전망과 대응 전략’이라는 대외비 문건을 작성했다. 대법원 상고 1년11개월 만에 나온 유죄 선고를 두고 ‘야당 탄압’ 주장이 쏟아지자, 상고법원 도입에 미칠 파장 등을 따지기 위해 야당 내부의 계파 분석까지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의 이런 분석은 사법정책 입법을 위한 관심 차원을 한참 넘어섰다. 당시 야당에 대해 “친문 중심으로 당내 역학 관계가 재편되고 있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친노의 중심축이던 한 전 총리가 정치권에서 사실상 퇴장함으로써 ‘친노’는 자연스럽게 ‘친문’(문재인)으로 재편성되고, 내년 국회의원 선거 공천 과정에서 문재인 대표의 색깔이 한층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친노 세력(전해철, 박범계 의원) 등 한명숙 판결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의원”에 대해서는 “성급한 접촉 시도는 역효과”라며 “일정 기간 냉각기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문건은 또 “한 전 총리가 참여정부의 상징적 인물이고 19대 국회의원 공천을 주도한 바 있어,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와 친노 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법원 판결에 대한 거센 비판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편, 당시 행정처 간부가 <조선일보> 기자들을 만나 작성한 ‘주요 언론 접촉 결과 첩보보고’(2015년 3월30일)에는 “한명숙 사건 등 주요 관심 사건에 관해 (결론이 아닌) 선고 예정 기일 등 사건 진행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호감 확보가 가능하다”고 적었다. 문건은 당시 ‘조선일보 쪽이 한명숙 사건 상고심 처리 독촉을 했다’는 취지로 당시 만남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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