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어린이들의 최대 궁금증 가운데 하나는 태권브이(V)와 마징가제트(Z)가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였다. 특히 ‘국산’으로 알았던 마징가제트가 ‘일제’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실망감은 승부욕으로 바뀌었다. 30여년 만에 ‘민사 재판’에서 첫 승부가 났다. 물론, 태권브이가 이겼다.
국산 만화 캐릭터 태권브이가 일본의 만화캐릭터 마징가제트’와는 다른 독립 저작물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8단독 이광영 부장판사는 31일 주식회사 로보트태권브이가 “저작권을 침해받았다”며 완구류 수입업체를 운영하는 ㄱ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4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주식회사 로보트 태권브이는 ㄱ씨의 회사가 만든 나노블럭 형태의 완구가 태권브이와 유사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로보트 태권브이는 만화 캐릭터 태권브이와 관련한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ㄱ씨는 “태권브이는 일본의 마징가 제트, 그레이트 마징가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창작물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맞섰다. ㄱ씨 자신이 판매한 완구는 일반적인 로봇의 형태로 태권브이와는 유사하지 않고 나노 블록인 만큼 다양한 형태로 변형해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재판부는 “태권브이는 마징가 등과 구별되는 독립적 저작물 혹은 또는 변형·각색한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봤다. 마징가 제트나 그레이트 마징가와 외관, 특징, 개성 등을 비교해볼 때 뚜렷하게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태권브이는 대한민국 국기인 태권도를 바탕으로 해 일본문화에 기초해 만들어진 마징가 등과는 특징·개성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ㄱ씨의 완구와 태권브이의 유사성은 인정했다. 캐릭터 가슴 부분에 새겨진 브이(V)자 형태, 이마 부분의 머리띠 형태, 머리띠에 붙은 점, 머리 위 빨간색 뿔, 빨간색 턱 부분과 가운데 노란 점 등이 동일하다는 취지에서다. 재판부는 “브이자 형태는 크기와 위치로 인해 가장 눈에 쉽게 띄는 특징 중 하나인데, 마징가 제트의 경우 가슴 부분의 빨간색 브이자 가운데 부분이 끊겨있고 형태도 태권브이와 약간 다르다”며 “(ㄱ씨의 완구처럼) 가슴에 단절되지 않은 브이자가 새겨진 로봇 캐릭터는 흔치 않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나노 블록 장난감인만큼 다양한 형태로 조립될 가능성이 있다 해도 주된 조립 형태는 태권브이 모양”이라며 ㄱ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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