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콥(11·가면)이 지난달 26일 오후(현지시각) ‘캠프 11’ 자신의 집에서 캠프에서의 하루와 고향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5남매중 장남인 야콥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교육을 받고 있다. 야콥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아픈 가족과 이웃을 돕기 위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콕스 바자르/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My world is destroyed(제가 살던 곳은 파괴됐어요).”
미얀마 출신의 로힝야족 소년 야콥(11·이하 모두 가명)은 지난달 26일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의 난민촌에서 <한겨레>와 만나 그림을 하나 보여줬다. 지난해 8월까지 살았던 미얀마 라카인주의 집이라고 했다. 야콥은 집과 주변에 심어져 있었던 나무들, 가족과 함께 탔던 차를 그렸다. 미얀마를 떠나기 전에 봤던 누군가의 손도 그렸다. 그리고 붉은 색으로 칠했다. “미얀마를 떠나면서 집과 차가 불에 타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피 묻은 손도 봤어요. 제가 살았던 곳은 완전히 파괴됐어요. 그걸 그린 거에요.” 야콥의 아버지 아만(31·가명)은 “살기 위해서는 탈출해야만 했다”며 “미얀마 군인들이 보이는 집은 모두 다 불태우고 사람들을 향해 마구 총을 쐈다”고 미얀마를 떠나올 당시 상황을 전했다.
야콥이 지난달 26일 오후(현지시각) ‘캠프 11’ 자신의 집에서 불타버린 고향집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콕스 바자르/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야콥의 가족이 고향인 미얀마를 떠난 이유는 지난해 8월25일 시작된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인종청소’ 때문이다. 불교도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은 소수민족이다. 미얀마 정부는 1970년대 이후 로힝야에 대한 차별정책을 본격화 했고, 로힝야는 이후 줄곧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자’였다. 그러던 지난 2016년 10월 미얀마 정부에 공격을 가하는 로힝야 반군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이 등장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25일 로힝야족의 주요 거주지인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경찰 초소 30여곳을 습격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보이는 족족 총으로 쏘고 집을 불태우며 보복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소요로 지난해 8월25일부터 9월24일 사이에 미얀마에서만 최소 9400명의 로힝야족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산한다.
미얀마 정부의 폭력에 신음하던 로힝야족은 미얀마와 국경이 닿아있는 방글라데시의 콕스 바자르 지역으로 피난길을 떠났다. 야콥 가족도 이곳에 만들어진 난민촌에서 살고 있다. 콕스 바자르는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와 나프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접경지역이다.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 난민촌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약 9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여의도의 3배 가량 면적인 나프강 주변의 불모지에 27개의 캠프로 나뉘어져 거대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 대나무 뼈대에 방수포를 덮은 텐트 20만개가 빽빽히 자리잡고 있다.
지난달 28일 난민촌 남쪽 구역인 ‘캠프 13’에서 만난 소녀 샤히라(13)는 미얀마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간신히 목숨만 건졌다. 부모님과 일곱 남매가 함께 살던 샤히라 가족은 지난해 9월 이슬람 명절 중 하나인 ‘쿠르반 바이람’ 기간에 미얀마를 탈출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샤히라의 부모님은 탈출 과정에서 미얀마 군인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밤 샤히라도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라카인에서 난민촌에 도착하기까지 보통 3~4일 정도 걸리는데, 저는 다리를 다쳐 열흘이 넘게 걸렸어요. 걷지를 못해서 이웃들이 큰 바구니에 담아서 방글라데시 국경까지 데려다줬어요.” 난민촌에 도착해서 이웃들 도움으로 뿔뿔히 흩어진 가족들을 찾았는데, 부모님과 친척들 여러 명은 이미 죽었고 남은 동생들과 다시 만나서 한참을 부둥켜 안고 울었어요.”
지난달 28일 오전(현지시각) ‘캠프 13’에서 만난 생후 6개월된 아기가 대나무에 매달린 작은 침대에서 쌔근쌔근 잠에 빠져 있다. 이 아기는 난민 캠프에서 태어났다. 콕스 바자르/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
간신히 도착한 난민촌에서 안도감을 느낀 것도 잠시, 이들은 지옥과 같은 열악한 생활 환경과 마주해야 했다. 여성과 어린이들은 특히 더 고통스러웠다. 난민촌에 자리 잡은 로힝야인들은 방수포 하나만 걸친 텐트에서 1년 넘게 생활하고 있다. 여성들은 임시로 지어놓은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에서 불안에 떨며 몸을 씻고 용변을 해결한다. 지난달 27일, 캠프 13에 있던 한 여성용 샤워실은 천장과 벽이 무너져 내려 길을 가는 사람들이 밖에서 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캠프 11에 사는 자밀라(20·가명)는 “남자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샤워는 항상 밤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민촌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탓에 밤이면 칠흑같은 어둠이 내린다.
난민촌에서 출산을 하는 경우에는 최소한의 위생용품도 제대로 공급받기 어려웠다. 자밀라는 텐트에서 아이를 낳으면서 겪었던 어려움도 호소했다. “6개월 전 텐트 안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를 닦아줄 비누와 수건이 없었어요. 입혀줄 옷도 없었고요. 위생용품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으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캠프 13의 여성아동보호공간에서 지난달 27일 만난 헤나도 “한달 반 전 아기를 낳고 얼마 안 지나 우기가 시작됐어요. 텐트 안에 있으면 비를 맞지는 않지만 빗물에 젖은 바닥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 방수포를 깔고 그 위에 이불을 깔아서 눕히지만 아기가 너무 힘들어 해요”라고 말했다.
돈을 벌 수도 없고 물자를 공급받기도 힘든 난민촌 사람들은 국제식량기구(WFP)에서 배급하는 먹을거리에만 의존해 살고 있다. 국제식량기구는 난민촌 사람들에게 5인 가족을 기준으로 매달 쌀 27㎏와 렌틸콩 8㎏, 식용유 3ℓ를 나눠주고 있다. <한겨레>와 만난 난민들은 “배급 받은 식량으로는 생존은 가능하지만, 건강하게 영양분을 공급받으면서 살기 위해서는 신선한 야채와 고기, 생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남편과 세 아이를 잃은 로키야(25·가명)도 ‘어떻게 하면 하나 남은 네 살 짜리 딸을 잘 먹일까’가 가장 큰 걱정이다. “언제까지 쌀과 콩만 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는 고민 끝에 난민촌 근처의 허름한 호텔에서 몰래 일을 했다고 털어놨다. “하루종일 호텔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하고 100타카를 받았습니다. 난민촌에서 호텔까지 왕복 교통비 20타카를 빼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80타카(1000원 가량)였죠. 이 돈으로 야채와 생선을 조금씩 구입했어요.”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 사장은 로키야에게 그 돈 마저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고 로키야는 더 이상 출근할 수 없었다.
지난달 27일 오전(현지시각) ‘캠프 13’ 아동친화쉼터(CFS)에서 놀이 수업이 한창이다. 3살부터 8살까지 어린이 65명의 노래소리가 캠프에 울려 퍼진다. 아이들이 신기한 듯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콕스 바자르/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교육도 문제다. 난민촌에 머무르는 로힝야인 90만여명 중 3~17살 인구가 53만여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뛰어 놀아야 할 나이지만 난민촌에는 학교가 없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난민촌에 정식으로 학교를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야콥와 샤히라를 포함한 난민촌의 아이들은 월드비전 등 국제구호단체들이 운영하고 있는 아동친화공간(CFS)에 다니면서 놀이를 통해 알파벳이나 숫자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로키야는 “처음 난민촌에 와서 한동안은 딸이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월드비전 직원들 도움으로 아동친화공간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놀이 프로그램 말고는 전혀 교육을 받을 수 없다”며 답답해 했다.
난민촌의 로힝야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고향이 있는 미얀마로 돌아가면 수십년 동안 계속됐던 탄압을 받을 것이 뻔하고, 난민촌에서도 언제까지 머무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샤히라의 할머니는 “로힝야인들의 미래나 희망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제는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만 있으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로힝야인들이 원하는 ‘지금보다 나은 삶’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헤나는 “어둠을 밝힐 수 있는 조명과 요리를 할 수 있는 오븐”을 소망했다. 로키야는 “비가 오는 날 바람에 집이 날아가지 않고 집 안에서 전기를 쓸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했다. 고향에서 쫓겨나 가족과 집을 잃은 이들이 밝은 조명 아래 안전한 집에서 따뜻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까.
콕스 바자르/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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