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해 8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가 이제까지 알려진 ‘항소심 관여’ 시기보다 1년여 앞선 2013년 1심부터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 재판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거듭 확인되고 있다.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22일 <한겨레> 취재 결과, 법원행정처는 2013년 10월23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1심 재판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에 대한 법리 검토를 했다. 당시 사법지원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에는 재판부가 변경을 허가·기각하는 ‘시나리오’를 나눈 뒤 그에 따른 법리와 파장 등을 상세히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해당 문건은 ‘현재로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명분이 없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주일 뒤인 10월30일 1심 재판부는 공소장 변경을 허가했다. 재판부가 공소장 변경 신청 당일(10월18일) 공판검사로부터 검찰 수뇌부와 갈등 등을 담은 내용의 이메일을 전달받은 직후 당시 기획조정실장이던 임 전 차장에게 ‘직보’한 사실도 지난 5월 대법원 특별조사단 조사 결과 드러난 바 있다. 사법지원실이 해당 문건을 임 전 차장을 통해 전달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행정처가 일선 법원의 공소장 변경 허가 여부까지 검토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내용이 어떤 식으로든 재판부에 전달됐다면, 그 자체로 재판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이 문건은 앞서 대법원이 공개한 문건 410건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문건 작성 시점도 석연치 않다. 그해 10월18일 ‘윤석열 특별수사팀’은 대선 개입 트위터 글 5만5689건을 추가하는 공소장 변경 신청을 했는데, 그 하루 전인 10월17일 검찰 수뇌부는 윤석열 팀장을 수사팀에서 배제한 상태였다. 10월19일에는 대검 차원에서 ‘변경 신청 재검토’에 들어갔고, 10월21일 검찰 국정감사에선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윤석열)는 증언까지 나왔다. 이후 10월28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대통령은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등 정국이 요동치던 시점에 법원행정처가 재판 개입 의심을 살 수 있는 부적절한 ‘정무적 분석’을 한 셈이다.
특별조사단이 ‘부실 조사’를 벌인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공소장 변경 관련 문건이 지난해 말 진행된 대법원 2차 조사 때 이미 발견됐다는 증언도 있다. 조사 과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3차 조사단에서 문건을 누락했을 수 있다. 대표적 재판 거래 의혹 사건인 만큼 하드디스크 전수조사를 했어야 한다”고 했다. 앞서 검찰의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서를 국회의원에게 제공하는 것을 검토하는 내용의 문건도 추가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 3차 조사단 쪽은 “제목이 특정 안 되는 문건에 대한 답변은 곤란하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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