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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0평 공간에 가둬서 미안하구나

등록 2018-07-20 19:25수정 2018-07-22 09:34

이동장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경계 중인 라미와 보들이.
이동장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경계 중인 라미와 보들이.
[토요판] 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22. 고양이에게 익숙한 영역

지난 6월 초,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두 녀석을 데리고 동네 하천에 나가 사진을 찍기로 했다.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한 작업이었다. 지난 번 책을 쓸 때도 그랬지만, 늘 스마트폰 카메라로 주로 방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라미와 보들이를 찍다보니, ‘멀쩡한’ 사진 한장이 없었다. 더 더워지기 전에 산책도 해야겠다 싶었다.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를 챙기고 오랜만에 가슴줄을 채웠다. 그동안 살(또는 털)이 찐 보들이는 아깽이(아기 고양이) 시절에 산 가슴줄을 최대한 늘려 입혔다. 그날따라 라미는 평소에 잘 들어가던 이동장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지난해 12월 이후로 라미는 이동장에 들어가 나들이를 한 적이 없었으니 어색하기도 했겠지만, 평소 이동장 탑승을 거부한 적이 없었던 터라 좀 이상하다 싶었다. 결국 두마리를 한 이동장에 같이 넣었다.

시작부터 라미는 집사에게 바짝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두번째 촬영 지점에 이르러 사고가 터졌다. 카메라 타이머를 맞추고 있는데, 찡찡거리던 라미가 갑자기 크게 울더니 시멘트 바닥을 박차며 달아나려고 했다. 가슴줄을 이동장에 묶어놓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날 뻔 한 순간이었다. 라미는 미아가 됐을지도 모른다.

촬영을 중단하고 라미를 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숨을 돌리고 나서 보니 윗옷에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라미에게서 묻은 게 분명했다. 10여분 동안 라미 몸 구석구석을 뒤진 끝에 상처를 찾았다. 왼쪽 뒷발 가장 안쪽 발톱이 긁혀 있었다. 땅을 박차고 달아나려다 생긴 상처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진 한 장 찍어보려는 욕심에, 고양이들은 익숙한 곳을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무시해서 생긴 사고였다.

보들이의 취미생활은 창밖 풍경 감상이다. 캣타워에 느긋하게 누워 창밖을 바라보거나 앞발을 들어 방묘창 위에 걸치고 바람 냄새를 맡으며 바깥 세상을 구경하기도 한다.

라미는 조금 다르다. 아깽이 시절 라미는 현관문만 열면 뛰어나갔다. 베란다 쪽 창문으로 뛰어나가 에어컨 실외기 위로 위태롭게 뛰어오른 적도 여러번이다. 보들이가 오기 전까지 일주일에 한번 꼴로 주말이면 라미를 품에 안고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20분 쯤 걸리는 산책이 끝날 때쯤이면 라미는 가방에서 나와 집사의 어깨에 오르려 했다. 돌이켜보면 당시엔 생후 4개월 안팎의, 호기심이 왕성한 어린 고양이라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현관에 방묘문을 설치한 이후에도 가끔씩 라미가 밖으로 뛰어나간 적이 있지만, 라미의 반경은 한결같다. 아래층이 아닌 위층으로, 딱 반층 높이의 계단까지만 뛰어간 뒤 그 자리에서 서성댄다. 라미와 보들이 둘다 정말 바깥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건 아닌 것이다.

‘고양이에겐 넓은 공간보다 위아래로 오르내릴 수 있는 공간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함께 살아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지만, 정말 그게 최선인지는 여전히 확실치 않다. 라미와 보들이에게 익숙한 공간이, 10평 남짓 비좁은 내 방 안 뿐이라는 현실이 여전히 미안하고 짠하다.

서대문 박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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