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열사병 예방 가이드 사업장에 배포
불이행 땐 사업주 5년 이하 징역 등 사법처리
바쁜 공정·주변 민원에 “들어본 적 없어요”
노동부 “가이드라인 근로감독 지속할 것”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가 발효된 18일 오후 1시 서울 시내 한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폭염 특보가 발효되면 낮12시부터 2시간 동안 야외 노동을 중단하라는 서울시의 권고가 있었지만 대부분 이를 알지못하는 듯 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틀째 폭염경보가 내렸던 17일 오후 3시께 은평구의 한 건물 철거현장 인근 도로에서 자동차들을 안내하던 ㄱ(46)씨는 손등으로 연신 얼굴의 땀을 훔쳤다. ㄱ씨의 얼굴은 검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ㄱ씨는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3시까지 한시간가량 점심식사를 한 것 말고는 쉰 적이 없다고 했다. ㄱ씨는 “철거현장은 시끄럽다는 등의 민원이 들어와서 빨리 치고 빠져야 하기 때문에 쉬고 말고 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더위를 잠시 피할 곳도 없어 ㄱ씨는 일하는 내내 뜨거운 볕을 고스란히 받아내야했다. 일하는 현장에 그늘이라곤 철거현장을 가린 천막 왼편에 진 그늘이 전부였다. ㄱ씨가 “거기 서 있다가는 철거하면서 날아온 돌을 맞는 수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 주먹보다 큰 돌이 날아와 땅에 툭 떨어졌다. ㄱ씨가 “거봐요”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야외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 등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직종에 있는 노동자들이 힘겹게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월 발표한 ‘업종별 온열질환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보면 2014년~2017년까지 일하던 도중 온열질환에 걸린 사람의 수는 35명으로, 이 가운데 4명이 사망했다. 재해비율은 건설업이 65.7%로 가장 높았고, 4명 모두 건설업 종사자들이었다.
고용노동부는 본격적인 여름철을 앞둔 지난달 4일부터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작업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9월30일까지 건설현장 옥외작업자 온열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감독·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 개정한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 가이드’를 사업장에 배포했다.
가이드에 따르면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사업장은 △폭염경보 땐 1시간에 15분, 폭염주의보땐 1시간에 10분 휴식시간 제공 △시원한 음료수 제공 △현장 그늘막 설치 등을 해야한다. 만약 해당 가이드가 적절하게 지켜지지 않으면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징역 5년 이하 혹은 벌금 5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자치단체장도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자치단체가 발주한 사업현장 등에서 폭염 대응을 부실하게 해 산업재해가 날 경우 자치단체장도 똑같이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 하지만 현장노동자들은 해당 가이드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영등포 양평동의 한 건설현장에서 만난 이아무개(68)씨도 정부 가이드 내용을 알지 못했다. 이씨는 패트병에 물을 담으며 “여기 현장은 그늘막도 있고 냉장고에 물도 채워놔서 다른 현장보다는 에프엠”이라고 말하면서도 “40분 일하고 쉬라고 하는데 다른 공정이 진행되는 걸 보면 쉴 여유가 없다. 정부 가이드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은평구의 한 마트 주차관리 요원 ㄴ(41)씨도 해당 가이드 들어본 적 없다고 말했다. 좁은 그늘막 아래서 두 팔을 바삐 움직이던 ㄴ씨는 “물을 마시려면 사무실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스쿨존 지킴이’로 일하는 공공근로자 ㄷ(80)씨도 휴게시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ㄴ씨는 “아이들이 없는 때가 쉬는 시간”이라며 “햇볕이 너무 뜨거울 땐 학교 옆 과일가게의 야외 파라솔 그늘안에 잠시 피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노동자들은 자체적으로 쉴 방도를 찾았다. 은평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토목 담당으로 일하는 심아무개(55)씨는 “그늘막이 없으니 그냥 건물안에 들어가서 잠깐씩 쉬고 나온다”며 “내가 내 몸을 안 챙기면 챙겨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쉬는 시간을 안줘도 알아서 쉰다”고 말했다. 심씨도 정부의 ‘열사병 예방 3대수칙 가이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서울지역 한 구청의 조경관리 공공근로자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해가 한창 뜨거운 시각에 잡초를 뽑는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 그늘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가며 풀을 다듬는다고 했다. 한 노동자는 “구청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언제 어떤 방식으로 쉬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너무 더워서 힘들면 좀 쉬었다가 일하고, 물도 각자 집에서 챙겨와서 마신다”고 말했다. 정부 가이드에 따르면 물은 노동자가 스스로 챙기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나 지자체에서 제공해야한다.
이승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조 정책국장은 “가이드 수준에서 강제성이 있는 규칙으로 개정된 건 환영할만하지만 시행 이후 첫 여름이라 그런지 아직 현장까지 미치지 못했다”며 “현장에 잘 정착하도록 고용부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전국 47개 지방고용노동관서를 통해 건설현장이나 조선업에 폭염대응 가이드를 홍보했고, 안전보건공단의 건설 안전지킴이들이 작은 사업장을 감독하고 있다”며 “감독관 400명이 모든 사업장을 다 관리할 수 없어 건설현장 지도점검 등을 나갈 때 노동자들에게 물·그늘·휴식이 적절히 제공됐는지 감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고용부는 18일 전국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열사병 발생사업장 조치기준(지침)을 내려보내 열사병이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 작업중지 등 강력조치를 예고했다. 폭염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옥외 작업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를 통해 위험 상태가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관련된 모든 작업을 중지시키고, 사업장 안전보건전반에 대한 강도 높은 감독을 실시한다.
장수경 신민정 기자 flying71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