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화 변호사가 1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의 대학 동기인 행정처 관계자를 통해 상고법원 반대 주장을 축소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행정처는 또 양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설득해야 할 국회의원을 ‘거점의원’으로 지정해 접촉하겠다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는 16일 민변 소속 이재화 변호사를 불러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 변호사는 이날 검찰 조사 뒤 기자들을 만나 2014년 9월 대법원 상고법원 공청회를 앞두고 대학 동기인 윤성원 사법지원실장(현 광주지법원장)으로부터 ‘상고법원이 위헌이라는 얘기는 제발 하지 말아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윤 전 실장이 “상고법원에 대해 다른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좋은데, 상고법원 설치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회유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조사 과정에서는 2014년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득을 위해 접촉해야 할 국회의원을 ‘가능성 그룹’, ‘개연성 그룹’, ‘주요설득 거점의원’ 등으로 나눠 관리한 정황도 추가로 드러났다. 2014년 9월께 작성된 ‘상고법원 공동 발의 가능 국회의원 명단’에서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입법의 캐스팅보터가 될 의원들을 ‘주요설득 거점의원’으로 정리하고, 여당과 야당으로 나눠 명단을 관리했다고 한다. ‘주요설득 거점의원’으로는 권성동·김재원·김학용·김회선·나경원·노철래·유기준·윤상현·이병석·이정현·정갑윤·주호영·홍일표 당시 새누리당 의원, 박범계·박영선·박지원·서영교·양승조·우윤근·최원식·최재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처는 명단에 언급된 의원들에 대해 “(행정처의) 전담 실·국장들이 개별 접촉해 설득작업을 벌여야 한다”는 전략을 짠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날 이 변호사를 상대로 양 대법원장 때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민변 대응 전략’ 문건이 실행됐는지 캐물었다. 2014년 12월29일 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작성한 이 문건에는 민변과 참여연대 등 상고법원 반대 시민단체 대응 전담부서로 ‘사법정책실’이 지정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이 부분에는 그해 12월22일자 작성된 문건이 재인용 형식으로 언급돼 있다. 대법원 자체조사단은 해당 문건을 확인하지 않았다.
검찰은 ‘사법 농단’ 전모를 밝힐 핵심 뇌관으로 사법정책실과 사법지원실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정책실은 2015년 ‘상고법원=위헌’이라며 반대하는 대한변호사협회를 압박하려고 형사재판 등에서 변호인 권한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재판 거래 의혹에도 등장한다. 사법정책실 심의관은 2014년 말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하자, 관련 소송의 재판 결과를 시나리오별로 나눠 득실을 따지는 문건을 작성했다. 2016년에는 통진당 국회의원 의원직 확인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고하기도 했다. 대법원 자체 진상조사단마저 “대법관의 재판 권한을 침해하거나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사법지원실에 대한 ‘수사 단서’도 늘어나고 있다. 사법지원실은 하창우 당시 대한변협 회장을 압박하기 위해 전산정보관리국을 통한 수임 내역 조회와 국세청 조사 의뢰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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