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집 인근 공원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양승태 대법원이 2016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을 모면하기 위해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 상고법원을 성사시키려고 여야 국회의원의 동향을 파악하는 한편,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 인선에 개입하려한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대법원 자체 조사에서 제외된 컴퓨터 하드디스크 파일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는 1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를 불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작성된 ‘상고법원 입법 추진 관련 민변 대응 전략’, ‘상고법원안 법사위 통과 전략 검토’, ‘2015년 상고법원 입법 추진 환경 전망과 대응 전략’, ‘상고법원 관련 법사위 논의 프레임 변경 추진 검토’ 등 7건의 문건의 실행 여부 등을 확인했다. 이 중에는 이번에 대법관으로 임명제청된 김선수 변호사 등 민변 변호사 7명과 일부 법학교수 등을 특정해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블랙리스트”라며 국회 개헌특위 참여를 막아야 한다는 메모 형태의 문건도 있다.
최용근 민변 사무차장은 이날 검찰 조사 뒤 브리핑에서 ‘야당 분석’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문건(2016년 10월27일 작성)에서 “상고법원 반대 블랙리스트”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문건에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선수·정연순·송상교·장주영·성창익 변호사 등 민변 소속 인사 7명의 이름과 함께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등 법학계 인사를 특정한 뒤, 국회 개헌특위 위원 및 외부 전문위원 위촉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당시는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코너’에 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국민담화(2016년 10월24일)를 통해 개헌 추진을 밝히고 국면 전환을 시도한 직후였다. 최 변호사는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 위촉과 관련해 블랙리스트로 명기돼 있었다. ‘블랙리스트를 널리 퍼뜨려야 한다’고 돼 있었다”고 전했다. 김선수 변호사는 이후 국회 개헌특위 전문위원으로 위촉됐지만 상고법원을 논의하는 ‘사법부 분과’가 아닌 ‘기본권·총강 분과’에 포함됐다. 성창익 변호사는 사법부 분과에 포함됐지만, 분과 내부(6명)에서 상고법원 도입과 대법관 증원 의견이 팽팽했다.
민변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국회 법사위 소속 여야 의원에 대한 세평과 동향 등을 파악한 뒤 ‘상고법원 입법로비’에 나선 정황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최 변호사는 “‘○○○은 법사위원장직을 계속 맡을 거 같다’, ‘○○○은 정에 약하다’ 등의 평가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문건에는 “법사위에 민주당 쪽은 ‘친노 의원’이 많다. 전해철 의원이 강력하게 반대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민변 대응 전략’의 구체적 내용도 확인됐다. 최 변호사는 “(7건의 문건 중) ‘강온 전략’으로 구성된 민변 대응 전략 문건의 경우, 민변 조직 현황 등을 면밀하게 사찰하고 대의원회 등 의사결정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하려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했다. 특히 상고법원에 반대하던 민변,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세 개 단체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에서 ‘전담 마크’하는 임무가 주어진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민변 특별회원으로 당시 국회의원이던 일부 의원을 통해 상고법원 입법 우호 여론을 조성하려는 ‘밑그림’을 짠 사실도 확인했지만, 실제 실행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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