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 “사법부가 창조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대가로 ‘상고법원’ 입법을 로비하고, 이 의원은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호성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연락해 박 전 대통령과 단독면담을 주선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2015년 6월4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은 청와대 인근 한식당에서 당시 새누리당 최고위원이던 이 의원을 만났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임 전 실장 등은 “사법부가 창조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소개하고 상고법원 입법을 청탁했고, 이 의원이 긍정적으로 답했다는 내용이 ‘이정현 의원 면담 주요내용’ 문건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 등이 상고법원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친박근혜계’인 이 의원 등 다른 루트로 청와대에 로비를 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문건에는 임 전 실장 등이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의 면담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했고, 이 의원이 곧바로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당시 부속비서관에게 전화해 면담을 추진해줬다는 내용까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기조실 심의관(판사)은 같은 달 12일 이 의원 사무실을 재차 방문해 “사법부가 창조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추가로 보고했다고 한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통령은 그해 8월6일 오찬회동을 했다. <한겨레>는 이와 관련 여러 차례 이 의원에게 연락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임 전 실장 등이 이 의원에게 제안한 ‘사법부의 창조경제 기여’는 이후 회동 직전까지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회동을 사흘 앞둔 그해 8월3일 만들어진 ‘VIP보고서’ 문건에는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사법한류 추진”의 구체적 방안으로서 ‘선진 사법시스템 구축’을 ‘국가경제발전과 직결’시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 문건은 양 전 대법원장이 회동 당시 지참했다.
대법원 자체조사단은 이런 문건을 확인했지만, 중요도를 상(A)·중(B)·하(C) 가운데 ‘중(B)’으로 분류해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임 전 실장은 언론 보도를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면담 관련 보도가 나온 지난 7일 기자들에게 “독대 요청 내용은 ‘(150612)이정현 의원님 면담결과 보고’ 파일 내용에 전혀 포함돼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내용은 같은 달 4일자 문건에 상세히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의 구체적 내용까지 특정한 점에 비춰 임 전 실장이 행정처 문건을 상당수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일고 있다. 대법원 자체조사 때도 일부 심의관은 임기가 끝날 때 문서를 일부 백업해 개인적으로 보관한 사실을 시인했고, 관련 문건을 제출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임 전 실장의 문건 유출 조사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대법원의 ‘사법 농단’ 관련 추가자료 제출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대법원은 지난 6일 청사 1층에 사무실을 꾸리고, 자체조사 대상이었던 임 전 차장 등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박상언 전 기획조정심의관 등의 컴퓨터까지 포함해 이미징 작업을 벌이기로 검찰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법원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제출 문건을 일일이 선별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