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탁태죄 폐지 공동행동’을 비롯한 71개 단체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총집중집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낙태(임신중지)를 형법으로 처벌하고,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을 범죄자로 낙인찍으면서, 한 사회의 재산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오롯이 전가해 왔던 시대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성평등 사회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외침이 이번 주말에는 혜화역과 광화문에서 이어졌다. 여러 집회가 동시에 열리며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모양새다. 광장에 모인 수만명의 시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원한 발언’을 비판하고 ‘임신중단 합법화’를 촉구했다. ‘혜화역 시위’ 주최 쪽이 4차 집회를 예고했고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결정’을 앞두고 있어 젠더 이슈와 관련된 집회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7일 오후 서울 혜화역 광장과 광화문 광장에서는 각각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와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집회가 열렸다.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 세 번째 집회를 연 ‘불편한 용기’는 ‘생물학적 여성’ 6만여명(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 1만8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성차별 수사 중단하라”, “우리의 일상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이어갔다.
이날 집회에서는 지난 1·2차 집회에서는 보이지 않던 “촛불시위 혁명이고 혜화시위 원한이냐”는 피켓이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여성들의 성과 관련된 수치심, 명예심에 대해서 특별히 존중한다는 것을 여성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줘야 여성들의 원한 같은 것이 풀린다”고 말한 데에 대한 반발이다. 주최 쪽은 “문 대통령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던 본인의 말을 책임져야 한다”며 “한국 여성들은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구체적인 해결방안 내놓고 즉각적으로 실행하라”고 외쳤다.
16개의 여성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같은 날 오후 5시부터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위헌·폐지촉구 전국총집중 퍼레이드-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집회를 열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결정을 앞두고 광장에 모인 이들은 “지난 5월24일 헌재의 낙태죄 위헌 소송 공개변론 이후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을 범죄자로 낙인 찍으며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해 왔던 시대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이들은 헌재가 있는 인사동 쪽으로 행진을 하며 “낙태죄를 여기서 끝내자”고 외쳤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적절치 못했다”며 “정부는 시위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혜화역 시위에서 터져나오는 목소리는 원한 가진 여성들의 혐오의 목소리가 아니라 분노의 목소리다. 여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차별적인 현실을 바꾸기 위한 여성들의 정치적 움직임을 바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희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도 “문 대통령이 혜화역 시위를 두고 ‘여성들의 원한을 풀어야 한다’고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자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굉장히 잘못됐다”며 “여성들을 달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과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사회 구조를 바꾸겠다는 메시지를 냈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젠더 이슈를 다루는 두 집회가 동시에 열린 점에 대해서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다양해진 것”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이 연구원은 “젠더 이슈 안에서 각자가 관심이 있고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에 대해 다양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고, 윤김 교수도 “여성들의 목소리는 단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며 “여러 주체가 낙태죄 폐지 집회를 여는 등, 다양한 여성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정치화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젠더 이슈 집회가 쉽게 끝나지 않고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는 전망도 내놨다. 이 연구원은 “여성들의 역량이 전보다 훨씬 강화됐다”며 “201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성평등 물결이 일었고 한국은 지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이 연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식이 강한 상황에서 성평등 사회를 향한 열망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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