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수 변호사.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노동 변론 30년 외길을 걸어온 김선수(57·사법연수원 17기) 변호사가 새 대법관 후보로 제청됐다. 역대 대법관 146명 중 법원이나 검찰을 거치지 않은 재야 법조인 출신은 한손에 꼽을 정도다. 그동안 성별, 학교 등의 편중뿐 아니라 고위 법관 출신들이 독차지했다는 지적을 받아온 대법관 구성과 관련해 이를 다양화할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변호사의 지명은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외에도 여러 면에서 상징적이다. 법원 내부에선 사법파동 주역이었던 박시환 전 대법관 임명제청(2005년) 이후 ‘13년 만의 파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대법관이 되면 그간 보수적인 노동사건 판례에 새로운 시각과 고민이 많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 김 변호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법원 판결에는 노동법이 아닌 민법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부터 김 변호사를 네 차례나 대법관 후보로 추천했던 대한변호사협회도 “오랜 기간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계속해왔고, 법원 순혈주의를 타파할 적임자”라고 강조해왔다. 김 변호사도 이날 임명제청 발표 뒤 <한겨레>와 통화에서 “임명되면 (노동사건 등에서) 대법원 구성 다양화에 부합하는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사법시험(27회)에 수석합격하고도 전형적인 ‘엘리트 법조인’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전북 진안 출신인 김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에 재학 중이던 1985년 “전태일을 생각하며” 사법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합격 뒤 <고시계>에 실린 그의 ‘도발적인 합격기’는 지금도 법조계에서 회자된다.
김선수 변호사가 사법고시 합격 뒤 <고시계>에 쓴 합격 수기.
“도대체 이것(사법시험)이 무엇이길래 수재라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청춘을 담보 잡히고 (중략) 합격했으면 판사나 검사로 임관받아야 한다는 사회통념이 형성된 것일까. 이런 통념은 아무런 의문 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돼야 할까?” “사회질서 자체가 불공평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일까? 사법시험 공부가 해석에만 치중해 법 제정 동기와 배경, 사회적 기능을 도외시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는 ‘합격기’에 예고한 것처럼 실제 판·검사가 아닌 노동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전태일 평전>을 쓴 고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1988년 일을 시작했고, 이후 30년을 노동·인권 변호사로 살았다. 서울대병원 노동자 1021명 법정수당, 공무원노조 창립, 골프장 보조원(캐디) 노조 설립 등 주요 노동사건이 그의 손을 거쳤다. 법조계와 노동계는 사내하청 노동자 지위, 노동자 해고 요건, 통상임금 법리 등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가 상당 부분 그의 변론을 통해 기틀이 잡혔다고 평가한다. 2014년 자신이 변론한 노동사건 25건을 묶은 책 <노동을 변론한다>에서 김 변호사는 “의뢰인이 신념을 굽히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또다른 관계자는 “예전에 맡았던 재판에 김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나온 적이 있다. 주장하는 내용의 근거를 사전에 꼼꼼하게 챙겨 나온 뒤 차분하게 변론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국회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표결 통과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김 변호사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법개혁비서관(2005~2007년),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2010~2012년), 통합진보당 해산사건 법률대리인 단장(2014년) 경력 등을 들어 대법관 임명에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김 변호사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청와대 비서관은) 당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기획추진단장을 맡아 사법개혁을 진행하던 때 맡았던 것이다. 전문가 등이 참여한 회의에서 표결을 통해 결정했지 청와대 지시를 받은 것은 없다. 야당의 주장처럼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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