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
미국 법원 배심원단이 16일 스마트폰에 쓰이는 모바일 핵심 특허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한 삼성전자에 4억 달러(한화 약 4000억원)를 배상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앞서 삼성전자는 이 소송과 관련해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대학교수가 재직했던 국립대 쪽을 여러 차례 만나 특허 소유권을 주장하는 맞소송을 내도록 부추긴 것에 더해 산업통상자원부에다 ‘산업 기술 무단 유출’ 혐의를 조사하도록 요청하기도 했지만, 결국 소송 패소가 유력하게 됐다.
삼성전자가 4000억원을 배상하게 된 이 특허는 이종호 서울대 교수가 2001년 발명해 2003년 미국에서 특허를 낸 ‘벌크 핀펫(FinFET)’으로 불리는 기술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피시 등에 쓰이는 3차원 트랜지스터 기술로 모바일 기기를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교수는 현재 카이스트의 자회사 ㈜케이아이피(KIP)에 특허 권한을 양도해 둔 상태인데, 삼성전자와 달리 인텔은 2012년 100억원의 사용료를 내고 이 특허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케이아이피는 2015년 갤럭시S6부터 이 기술을 써놓고도 특허권료를 내지 않겠다고 버틴 삼성전자를 상대로 2016년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에 특허 침해 소송을 낸 바 있다.
이날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 배심원단은 이 교수의 특허가 유효하며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를 인정한다고 평결했다. 특히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이 기술이 특허임을 알면서도 사용료를 내지 않고 써왔다며 ‘고의 침해’라는 판단을 내렸다. 평결의 결과가 확정되는 1심 판결에서 이러한 ‘고의 침해’가 인정될 경우 배상액은 최대 3배(1조20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소송 과정에서 자신들이 불리해지자 특허권자인 이종호 교수가 재직했던 경북대 쪽을 여러 차례 만나 특허 소유권을 주장하도록 부추긴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특허 침해 소송에서 실제 특허 소유권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소송이 기각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관련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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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에 케이아이피의 ‘산업 기술 무단 유출’ 혐의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소송에서 궁지에 몰리자 재판 쟁점을 상대 기업의 ‘기술 유출’로 몰고가기 위해 정부 부처까지 움직이려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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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 법원 배심원단은 이런 삼성전자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특허 침해임을 알면서도 고의로 침해한 사실을 인정하고, 인텔이 낸 사용료의 약 40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배상액으로 정했다. 이에 대해 강인규 케이아이피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그간 한국에서는 재벌 기업들이 개인 발명가나 중소 벤처기업, 대학 등의 기술을 무시하고 그냥 탈취하거나 헐값의 사용료를 내는 일이 벌어져왔다”며 “이번 재판이 이러한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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