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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법권 수호’ ‘인권변호’ 한평생…최영도 변호사 별세

등록 2018-06-10 17:04수정 2018-06-10 21:36

박정희 정권에서 외압 반발 1차 사법파동 주도
법관 재임용 탈락 뒤 45년 인권변호사 외길 걸어
“법원이 법관 사찰…사법부 존재가치 의심” 쓴소리

민변·국가인권위 창립…문 대통령 “변호사 표상” 추모
고 최영도(1938~2018) 변호사. 한겨레 자료사진
고 최영도(1938~2018) 변호사.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사법권 독립선언서’를 대법원장에 제출하는 등 1차 사법파동을 주도해 법관 재임용에 탈락한 뒤 45년 간 인권변호사로 살아온 최영도 변호사가 9일 별세했다. 향년 80.

1961년 고등고시 사법과(13회)에 합격한 고 최영도 변호사는 1965년 대전지법 천안지원 판사로 법조인의 길을 시작했다. ‘유신’ 전조가 나타나던 1971년 최 변호사는 주요 시국사건이 몰리던 격동의 현장인 서울형사지법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당시 서울형사지법에서는 정권의 뜻에 반하는 무죄 판결과 영장 기각이 빈발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민복기 대법원장에게 대놓고 불만을 터뜨리던 때였다. 그해 7월 서울지검 공안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맡은 서울형사지법 법관 2명이 피고인 변호사로부터 향응을 받았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를 정권의 외압으로 판단한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은 곧바로 집단사표로 대응했다. 최영도·홍성우 등 단독판사들은 민복기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했고, 최 변호사는 7개항으로 정리한 ‘사법권 침해 사례’를 대법원장에게 전달했다. 당시 언론은 이를 ‘사법권 독립선언서’라고 칭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민 대법원장의 미온적 태도에 분노한 법관들의 사표는 줄을 이었다. 당시 전국 법관 455명의 3분의 1인 153명이 사표 제출에 동참했고, 최 변호사가 작성한 7개항이 포함된 ‘사법권 수호 건의문’이 발표됐다. 최 변호사는 대통령에게 법관 임명·보직권까지 넘겨준 유신헌법이 선포된 직후인 1973년 1월 다른 ‘문제 법관’들과 함께 무더기로 쫓겨났다. 생전 최 변호사는 “사법파동 이전까지만 해도 중앙정보부도 법원을 어려워하는 편이었다. 당시만해도 서울형사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가 외압에 대한 바람막이 역할을 훌륭히 해서 일선 판사들이 그런 압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사법파동의 실패 이후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역사 속의 사법부>)고 회고했다. 최 변호사는 지난 2월 서울지방변호사회로부터 공로상을 받는 자리에서 “법원이 법관을 사찰해 재판의 독립을 침해했다면 사법부는 존재 가치를 의심받게 된다”며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관 뒷조사에 대한 쓴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변호사 개업부터 중앙정보부와 경찰 정보과 사찰을 받기 시작한 최 변호사는, 인권변호사 1세대인 황인철·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정치범·양심수 등 시국사건 변호를 맡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4월 당시를 회고하며 “인권변호사들이 수백, 수천 건의 시국사건을 변론했지만 무죄 판결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사법부가 침묵하고 제 구실을 못한 것”(<서울지방변호사회보>)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뿌리가 된 정의실천법조회(1987)에 참여한 뒤, 이듬해 민변 창립을 주도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 겸 인권위원장(1992~1995), 민변 회장(1996~2000), 참여연대 공동대표(2002) 등을 맡아 시국사건 변론과 양심수 석방에 노력하는 한편 국가안전기획부·검찰·경찰 등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에 맞섰다. 특별검사제 도입, 전관예우 철폐 등 사법개혁에도 앞장섰다. 특히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 뒤 민변 회장 자격으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 국가인권기구 설립을 요청했고, 이는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 출범으로 이어졌다. 최 변호사는 참여정부 때인 2004년 12월 2대 국가인권위원장에 임명됐지만 1980년대 초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며 석달 만에 물러나야 했다.

최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특별법 처리 촉구에 앞장서는 한편,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공동선언에 참여하는 등 최근까지도 시민사회 원로 역할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인권변호사로 함께 활동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페이스북에 “엄혹했던 독재정권 시대 1세대 인권변호사로서 후배들에게 변호사가 걸어갈 길을 보여준 표상이셨다”고 추모했다.

평소 미술과 클래식음악 등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평생 수집한 원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토기 1500여점을 200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유족으로 아들 효상(사업), 윤상(법무법인 정진 변호사), 현상(현대차 정몽구재단 부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2일 오전 8시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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