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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삼성, 산자부 움직여 ‘특허권 소송상대’ 기술 유출 조사

등록 2018-06-10 15:18수정 2018-06-10 20:18

인텔이 100억 낸 기술, 특허료 안내려 ‘꼼수’ 썼던 삼성
이번에는 산자부 움직여 KIP ‘산업기술 유출’ 조사 유도
전문가 “특허는 내용이 공개된 것이어서 유출로 볼 수 없다”
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
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미국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모바일 핵심 기술 관련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케이아이피(KIP)에 대해 ‘산업 기술 무단 유출’ 혐의를 두고 지난 4월부터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산자부의 조사는 삼성전자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특허 침해’ 소송에서 궁지에 몰린 삼성전자가 재판 쟁점을 ‘기술 유출’로 분산시키기 위해 정부 부처를 움직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2015년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 등에 쓰이는 모바일 3차원 트랜지스터 특허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다가 이 기술의 특허권을 보유한 카이스트의 자회사 케이아이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삼성전자와 달리 인텔은 100억원의 사용료를 내고 이 특허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오는 16일 1심 배심원 평결을 앞두고 있는 삼성전자는 현재 재판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관련 기사 : [단독] 인텔이 100억 낸 국내 기술, 삼성은 특허료 안내려 ‘꼼수’)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 2월 미국 재판부에 케이아이피가 한국의 산업기술보호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한데 이어 산자부에 ‘기술 유출’ 여부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전자는 <한겨레>에 “해당 재판을 위해 자료를 검토하던 중 국가 핵심기술이 허가받지 않고 외국으로 유출된 단서를 파악해 산자부에 조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산자부가 조사 중인 케이아이피의 기술 유출 혐의는 두 가지다. 하나는 2012년 케이아이피가 인텔로부터 사용료 100억원을 받고 이 특허권 사용에 관한 라이센스(허락) 계약을 체결한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케이아이피가 미국 특허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2016년 설립한 케이아이피의 미국 지사에 특허권을 양도한 것이다.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 핵심기술’로 판단되는 기술을 국외로 ‘수출’할 경우 산자부의 심의 및 승인을 받게 돼 있다. 산자부는 현재 이 특허가 ‘국가 핵심기술’인지에 대한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그러나 전문가들은 산자부 조사가 ‘국가의 핵심기술을 보호한다’는 법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2012년 케이아이피와 인텔의 특허 사용 계약은 이미 전 세계에 공개된 특허에 대한 단순 ‘사용권 계약’이기 때문이다. 산업기술 유출 관련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조원희 변호사는 “산업기술보호법의 취지는 유출되지 말아야 할 기술이 국외로 부당하게 유출돼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특허의 경우 그 내용이 이미 공개된 것이라 유출이라는 게 의미가 없다”고 짚었다. 케이아이피 쪽도 계약 당시 인텔과 기술 이전 없이 특허 사용권 계약만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케이아이피 관계자는 “이미 해당 특허를 기반으로 한 모든 기술을 갖춘 인텔이 2012년 제품 상용화를 앞두고 특허 침해를 우려해 사용 허락을 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아이피가 설립한 미국 지사에 특허권을 양도한 행위 역시 ‘기술 유출’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케이아이피의 미국 지사는 한국의 케이아이피가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로 모든 의사결정이 한국에서 이뤄진다. 단국대 창업지원단장인 손승우 교수는 “미국 소송용으로 만든 자회사에 특허권을 양도한 것은 기술 유출로 보기 힘들다”며 “소기업이 가진 기술 영향력은 대체로 크지 않기 때문에 국가 핵심기술이 되는 경우도 드물고 기업 스스로도 국가 핵심기술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까지 처벌하는 게 바람직하느냐에 대한 입법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원희 변호사도 “특허는 기본적으로 공개가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알고는 있지만 그걸 아무나 함부로 쓸 수 없도록 권리를 준 것”이라며 “정부에서 국가 알앤디(R&D)를 사업화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특허권을 가진 이가 이러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소송하는 것을 두고 ‘산업 기술 유출’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산자부는 두 달 가까운 조사를 벌이며 케이아이피 쪽에 특허권 ‘원상회복’ 명령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기술보호법을 보면, 산자부는 국가 핵심기술의 수출이 국가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원상회복 등의 조처를 명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원상회복’은 케이아이피 미국 지사가 갖고 있는 특허권을 다시 한국 케이아이피에 돌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산자부가 ‘원상회복’을 결정할 경우, 케이아이피는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삼성전자와의 소송에서 원고 자격이 박탈되거나, 최소한 배심원들에게 ‘위법행위를 저지르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남겨 재판에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산자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가 핵심기술 여부는) 아직 검토 과정에 있다”며 “세부적인 부분을 얘기하긴 힘들다”고 밝혔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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