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행정처(처장 안철상 대법관)가 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의 조사 대상 410개 문건 중 98개를 추가로 공개했다. 특조단 조사보고서에서 일부만 인용됐던 ‘VIP(대통령)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 추진전략’ 같은 민감한 문건의 전문 등이 다수 포함됐지만, 조선일보·민변·대한변협 등과 관련된 문건은 여전히 공개 대상에서 제외해 자의적 선별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안철상 처장은 예정에 없던 문건을 공개하면서, “특조단은 보고서에 174개를 인용했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조사보고서에서 인용된 90개 파일과 현재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중요 문서 파일 5개, 특조단 보고서에서 인용하지 않았던 문서 파일 3개도 더 공개해 의혹 해소와 특조단 조사의 신뢰성 담보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전문이 공개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을 보면 △밀양 송전탑 사건 △제주 강정 해군기지 사건 △휴일근로수당 중복할증 사건 등 지난달 25일 특조단이 공개한 조사보고서에는 없던 내용이 추가적인 “협력 사례”로 등장한다.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이 벌어진 사안들이지만, 특조단은 보고서 공개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없다”며 해당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었다.
조사보고서에 부분 인용됐다가 이날 전문이 공개된 문건 중에는 법무부와 ‘빅딜’ 방안 등을 담은 ‘입법 추진전략’도 눈에 띈다. 특히 이 문건에서 주목되는 것은 “주요 언론을 활용한 협상 압박 분위기 조성”을 위해 “법무부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고, BH(청와대) 인식을 환기시킬 수 있는 메이저 언론사 활용”을 언급하면서 “조선일보 1면 기사 등”을 예시한 대목이다. 이어 “8월 중 기고나 사설, 9월 중 설문조사” 등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까지 거론했다. 별도 문건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에선 “보수 성향 언론사에 아래 취지의 정보를 제공하여 인사모(인권법연구회 소모임) 비판기사를 내는 방안도 검토”를 제안하기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집 인근 공원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파문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그러나 행정처는 ‘조선일보 보도 요청사항’ ‘조선일보 홍보전략’ 등 제목에 ‘조선일보’가 들어간 10개 문건은 여전히 공개하지 않았다. 안 처장이 “특정 언론기관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첩보나 전략 문서 파일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는 거리가 있어 공개 범위에서 제외했다”고 밝혔지만, 법조계 일부에서는 이 문건들에 기고나 사설 게재 등과 관련해 매우 민감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정까지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관련 문건을 공개하라는 주장은 여러 곳에서 제기됐다. 검사 출신인 허용구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4일 법원 내부통신망(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조선일보 사주였던 방응모의 친일 반민족행위 행정소송 2심 판결이 난 지 약 5년이 지난 2016년 11월에야 대법원이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며 “언론 권력인 조선일보와 재판 거래? 감추어서도 안 되고 수사를 피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추가 공개 여지가 남아 있기는 하다. 안 처장은 “공개의 필요성에 관해 합당한 의견이 제시되면 공개 범위는 더 넓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강희철 선임기자,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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