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했다는 의혹을 둘러싸고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사건 적체를 해결할 대안으로 제시된 ‘대법관 증원’ 방안에 대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진보 세력의 입성 시도 위험”을 이유로 반대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5일 안철상 대법원 법원행정처장은 지난달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특조단·단장 안 처장) 조사결과 발표 당시 공개하지 않았던 문건 일부를 추가 공개했다. 이 가운데 2015년 8월3일 작성된 ‘VIP 보고서’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상고사건 누적으로 인한 고충을 전달하고 상고법원 설치를 피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건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단독면담(2015년 8월6일) 사흘 전에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상고법원 판사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라는 소제목의 문건에서 양승태 행정처는 “상고심 사건 폭증으로 물리적 한계에 봉착”했고, “상고사건의 처리 지연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며 “상고제도 개선이 절박”하다고 강조한뒤, 대안으로 거론되던 상고허가제, 대법관 증원 등 대안의 장·단점을 나열했다.
특히 대법관 증원 방침에 대해서는 ‘위험성 및 허구’의 근거로 “진보 인사의 최고법원 진출. 민변 등 진보 세력 배후에서 대법관 증원론 강력 지지 ? 상고법원 도입 좌초되면, 대법원 증원론 대안으로 내세우며 최고법원 입성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당시 양 대법원장은 자신의 인사권이 강화될 수 있는 상고법원 설치를 가열차게 추진하던 상황이었다. 대안 선택시 진보 성향 대법관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부채질해 보수 정권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어 또다른 대안으로 논의되던 상고허가제에 대해서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나 국민 정서와 괴리되고 이미 실패한 경험”을 반대 근거로 들고 “상고법원안이 최선은 아니지만, 우리 현실에 적합한 차선의 개선방안”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어 상고법원 판사 임명 과정에 “대통령님 의중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방침도 마련했다. “민주적 정당성 위해 대통령님이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돼 있는데,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대해서도 헌법의 취지를 존중하고 상고법원 판사 추천위원회 구성에도 반영하겠다”는 내용이다.
양승태 행정처는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던 ‘창조경제’와 ‘사법한류’를 연결짓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사법한류 추진’이라는 소제목의 문건에는 ‘선진 사법시스템 구축’을 ‘국가경제발전과 직결’시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지적재산권(IP)와 사법서비스 결합으로 신 성장 동력 마련’, ‘국가자유경제구역 내 국제상사법원 신설’, ‘사법제도 수출’ 등이 제시됐다. 또 ‘개발도상국’에 사법제도를 수출하기 위한 공동사업체를 만드는 방안도 구상했는데, “BH가 컨트롤타워로서 유관기관 참여하는 공동 추진체 구성, 사법한류 정책 표방 및 추진 ?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의 강력한 추진 동력으로 활용”하고, “창조경제 구현에 기여하는 전국가적 혁신 아젠다로 설정”한다는 게 당시 행정처가 제시한 계획이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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