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출퇴근 시각, 인터넷 사용 시각 등을 빅데이터 통계로 만든 뒤 ‘문제 법관’을 선별하고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5일 안철상 대법원 법원행정처장은 지난달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특조단·단장 안 처장) 조사결과 발표 당시 공개하지 않았던 문건 일부를 추가 공개했다. 이 가운데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2015년 9월30일 작성한 ‘문제 법관에 대한 시그널링 및 감독 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판사들의 근무 행태 관련 빅데이터를 축적한 뒤 이를 활용해 ‘문제 법관’의 근무 행태를 점검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양승태 행정처는 축적 가능한 빅 데이터의 예시로 ‘출퇴근 시 스크린 도어 신분증 기록, 업무 외 인터넷 사용 시간’, ‘판결문 작성 투입 시간, 판결문의 개수와 분량’, ‘재판 투입시간, 증인과 기일의 수, 법정 변론 진행 녹음 파일’ 등을 열거했다. 이어 “(이같은 빅데이터를) 기본적으로는 사법행정에 활용”하고 “평균에서 현저히 벗어나는 행태를 보이는 구성원에 대해서는 소명을 듣는 방안을 검토해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다만 빅데이터를 통한 관리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발동한다는 게 당시 행정처가 만든 기본 방침이다. 양승태 행정처는 “모든 법관들을 상대로 빅 데이터를 활용해 전자적 모니터링을 실시한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법관들 내부의 반발과 동요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돼 일반적 모니터링 수단으로는 부적절”하다며 이른바 ‘문제법관’에 대해 “개별적·예외적으로 심층 점검한다”고 문건에 기재했다.
이같은 방침은 양승태 행정처가 ‘출세(승진)를 포기한 판사’(승포판)로 이름 붙인 ‘문제 법관’을 선별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출퇴근 시간 미준수’, ‘재판업무 불성실 수행’, ‘배석판사에 대한 부적절 언행’을 하는 일부 고참 법관이 ‘승포판’의 사례로 꼽혔다. 양승태 행정처는 “사건처리율 등 외형적 통계 수치는 양호하게 유지하면서 기록 검토 및 판결문 작성 등 실질적인 재판업무는 등한시하는 합의부 부장판사가 존재”한다며 ‘내부자의 건강한 감시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3단계 대응 계획을 마련했다. 먼저 법원장, 수석부장판사 등 ‘공식채널’과 법원내부전산망(코트넷) ‘신문고’ 등 ‘온라인 익명 제보 시스템’, 법원별 고충전담법관 등을 선정해 ‘문제 법관’을 파악한 뒤(1단계), 문제 사례 교육과 가이드라인 제정?배포를 통해 경고(‘시그널링’)하고 (2단계), ‘빅데이터를 활용해 강도 높은 직무 감찰’을 실시하거나 사무분담 변경, 전보 등 인사조치, 징계하는 (3단계) 등의 방침이다.
다만 ‘문제 법관’에 대해 사무분담 변경이나 전보 등 인사조치를 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법관의 의사에 반하는 전보를 허용하면 인사권자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당시 윤리감사관실의 견해와 “법관의 신분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으로는 법관의 전보를 (헌법이 금지하는) ‘불리한 처분’으로 볼 수 없다”는 당시 인사총괄심의관실의 견해가 나뉜 것으로 드러났다. 양승태 행정처 기획조정실은 양쪽 의견을 수렴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지 않은 법관에 대한 정당한 인사 조치는 법관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불리한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문제 법관에 대한 징계를 대신할 문책 목적의 전보도 사실상 허용된다”고 결론지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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