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앞에서 열린 굴뚝 200일 울뚝불뚝 희망문화제에서 밴드 타틀즈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낮기온 29도, 일부에선 폭염주의보까지 내린 2일 노동자들이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나왔다.
`파인텍 굴뚝농성' 203일을 맞은 이날 `울뚝불뚝 희망문화제'가 파인텍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중인 75m 굴뚝 아래서 열렸다. 분홍색 풍선을 손에든 400여명은 파인텍의 모회사인 스타플렉스 서울사업소가 있는 목동의 한 빌딩 앞에서 결의대회를 연 뒤 굴뚝 아래까지 한 시간 가량 행진했다. 굴뚝 아래 도착해 이들은 가로 5미터 세로 10미터 크기의 펼침막 세개를 굴뚝을 향해 폈다. 펼침막엔 `우리, 모두, 함께'가 써있었다. 굴뚝 위 노동자들에게 굴뚝 아래서 몸으로 보내는 응원이었다.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박준호씨는 지난해 11월 12일 고용승계 등을 요구하며 굴뚝 위로 올랐다.
더운 날씨에 짜증날 법도 했지만 문화제 분위기는 밝았다. 비틀즈를 존경해 이름도 비슷하게 지은 인디밴드 타틀즈가 “굴뚝 위 노동자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며 ‘아이 워너홀드 유어 핸즈’ 등 비틀즈 노래를 연달아 불러 흥을 돋궜다. 무대 아래에선 문화제 참가자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몸을 흔들었다.
분위기는 파인텍 노동자인 김옥배, 조정기, 차광호씨가 무대에 올랐을 때 절정이 됐다. 세 명은 파업가에 맞춰 국민체조를 방불케 하는 ‘지게차 율동’을 반복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율동은 ‘상어 가족’ 송을 개사한 곡에 맞춰 조금 더 격렬해졌다. “유령 공장/뚜 루루 뚜루/필요없다/뚜 루루 뚜루/노동악법/뚜 루루 뚜루/폐기하라/” 노래에 맞춰 무릎을 들썩이는 낯선 문화제 모습이 쑥쓰러운 듯 차광호 지회장은 “오늘 이런 무대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겠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고 우리는 처져있을 순 없다”며 “헌법에 있는 노동 3권이 보장되는 세상이 되고, 지금까지의 적폐를 부수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자는 것이 우리 바람이다. 오늘 여는 무대에서 느꼈던 것처럼 생소하고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함께 정하고 함께 만들고 함께 싸워서 함께 승리하자”고 말했다.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앞에서 열린 굴뚝 200일 울뚝불뚝 희망문화제에서 416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고공농성중인 홍기택씨와 박준호씨가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동료들의 공연을 보며 활짝 웃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무대 마지막은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로 이뤄진 416합창단이 장식했다. 합창단은 ‘잊지않을게’ ‘내 가는 이 길 험난하여도’ ‘손을 잡아야해’를 불렀다. 합창단은 안산 생명안전보건회 부지에서 퍼온 흙과 참외나무 두 그루를 가져왔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이창현 군을 잃은 최순화씨는 “참외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 전에 굴뚝에서 내려왔으면 좋겠다. 적어도 열매가 맺을 때쯤엔 내려오셨으면 좋겠다”며 “일상적인 삶을 원하는 그날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다. 목표를 이룰때까지 함께 손잡자”고 말했다.
문화제를 지켜본 굴뚝위 박준호씨는 굴뚝 아래와 연결한 영상통화에서 "더운 날씨에도 한달음에 달려와준 동지들에게 감사하다"며 "스타플렉스 김세권 회장이 약속을 안 지키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우리는 약속이 지켜지길 앉아서 기다리고 있지만을 않을 것이다. 동지들이 힘을 보태준다면 약속이 지켜지는 날이 곧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문화제를 준비한 `파인텍 고공농성 200일 공동행동' 준비위원회는 지난달 파인텍 모회사인 스타플렉스 서울사업소에 김세권 대표이사와 면담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날 오후 3시께 김 대표이사와의 면담을 위해서 차광호 지회장, 봉혜영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7~8명이 스타플렉스 사무실로 올라 갔으나 사업소 문은 닫혀 있어 김 대표이사를 만나지 못했다. 봉 부위원장은 “지난달 스타플렉스에 공문을 팩스로 보냈고, 수신확인까지 했는데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며 “두 동지가 하루 빨리 굴뚝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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