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판사님이 아빠 돼줄게” 소년법정 떠난 ‘호통 법관’의 근황

등록 2018-05-29 15:11수정 2018-05-30 08:53

아이들 곁에서 8년 재판한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로
“설득할 시간만 충분하면 아이들 호통칠 필요 없거든요”
일본은 한 건에 한 시간, 한국은 3~5분 ‘컵라면 재판’
“애들 더 잔인해진 것 아냐…소년원보다 대안가정 필요”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천종호 판사는 8년 동안 1만2000여 명의 소년범을 재판했을 뿐 아니라, ‘청소년 회복센터’와 ‘사법형 그룹홈' 제도를 제안해 정착시키는 등 문제 해결 방안도 제시했다.”

지난해 10월 대구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호통 판사’로 불리는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판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노 의원은 천 판사에게 “지금 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해주시기를 바란다. 고맙다”라고 말한 뒤, 눈시울을 붉혔다.

천 판사는 “비행 청소년들도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다. 이 아이들도 소중한 미래가 될 수 있다.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화답했다.

천 판사는 같은 날 국감장에서 “소년 재판만 계속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승진도 영예도 필요 없다. 퇴직 때까지 소년보호 재판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천 판사는 2월26일 부산지방법원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

8년 동안 소년 재판 제도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천 판사는 인사 발령 뒤 “삶의 기쁨이 통째로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그가 언제 다시 소년 재판으로 복귀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우리학교)이라는 저서를 펴낸 천 판사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소년범을 위한 그의 마지막 변론을 들어봤다.

[영상] 눈시울 붉힌 노회찬 “‘소년범의 아버지’ 천종호 판사에게 고맙다”

“사회가 ‘투명인간’ 취급하는 아이들 도와줄 수 없어 가슴 아팠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10년 만에 하는 형사 단독 사건 재판에 적응하느라,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웃음)

-지난 2월 법원 정기 인사 발령으로 8년간 일했던 소년 재판장을 떠나면서 무척 허탈해했습니다. 지금은 어떠신가요?

“지난 한 달 동안은 ‘마음이 아렸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소년 재판장에서 만난) 아이들 곁을 떠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음 수행이 잘 안 되더라고요. (웃음) 밤에 자다 깨면, 혼자 앉아서 왜 이렇게 발령이 났을까 스스로 한탄도 해보고 그랬습니다.”

-왜 마음이 아프셨나요?

“우리 사회가 투명인간 취급하는 아이들을 더이상 도와줄 수 없다는 게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또 소년 재판과 관련한 제도적인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요. 가정법원을 떠나면 소년 재판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의견 표명할 자리가 안 되니까요.”

-소년범에 집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소년범) 아이들은 스스로 처우 개선을 해달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들을 대변해주는 사람도 없어요. 저라도 하지 않으면, 이 아이들 편에 서는 어른들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아서 혼자서 해왔던 겁니다. 때로는 가해 학생만 돌본다고 비판도 받지만, 저는 아이들(소년범)을 피해자와 동등하게 도와주고 싶어요.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의 주역들이니까요. 한 명이라도 더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5월8일 ‘부산 중학생 폭행 사건’의 피해 학생의 근황을 전했다. 사진 천 판사 페이스북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5월8일 ‘부산 중학생 폭행 사건’의 피해 학생의 근황을 전했다. 사진 천 판사 페이스북

-5월8일, 페이스북을 통해 ‘부산 중학생 폭행 사건’ 피해 학생의 근황을 전했습니다. 이 학생은 지난해 9월 또래 청소년 3명에게 심한 집단 폭행을 당했고, 페이스북을 통해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국민이 함께 분노하게 됐지요. 피해 학생에게 ‘판사님 딸 하자’고 제안도 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부산 중학생 폭행 사건’의 피해 학생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던 학생은 아니었어요. 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60일 정도 학교를 결석했던 상황이고요. 이 친구가 학교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던 이슈에 휘말렸죠. 학교에 가서 다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사건 이후) 또래 친구들이 이 아이를 어떻게 생각할지, 장기 결석을 했던 터라 아이들이 여전히 무시하고 무관심하게 대할 수도 있거든요. 이런 부분들이 걱정돼 ‘판사님 딸 하자’라고 했어요. 아이와 같이 사진을 찍었고, 누가 뭐라 하거든 보여주라고 했어요. 둘만의 약속이면 다른 사람들이 모르니까, 페이스북에 공개했고요. 학교에 가서 적응하기 힘들더라도 잘 참아보라고 했어요. 제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주지시켜주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서 계속 연락했습니다. 중간고사 마치고, 한 번 얼굴 보자고 했거든요. 마침 어버이날이 중간고사 마치는 날이었어요. ‘아이가 카네이션 한 송이 들고 올까’ 작은 기대를 했는데, 정말 들고 왔더라고요. (웃음) 이 아이가 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국민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공개했어요. 저녁 먹고, 책 사서 읽으라고 문화상품권을 선물로 줬습니다.”

천종호 판사가 쓴 세 번째 책.
천종호 판사가 쓴 세 번째 책.
“소년범이 다시 재판장에 서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호통칩니다”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이라는 제목의 세 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왜 변명인가요?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번역되는 플라톤의 <아폴로기아>(Apologia)라는 제목에서 따 왔는데요. 아폴로기아는 변명보다는 ‘변론’으로 번역하는 게 맞겠습니다. 소년범의 경우, 자신들을 변론할 위치에 있지 않잖아요. 보통 그 아이들의 부모도 먹고살기 바쁘고, 결손 가정이 많아요. 그렇다 보니, 아이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사회에 호소할 수도 없고요. ‘당신의 아이가 문제를 저질렀는데, 왜 사회에 호소하느냐’고 비판받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 가해자 부모들은 그렇게 하지도 못합니다. 지난 8년 동안 아이들의 처우개선을 위해서 변론 아닌 변론을 해왔잖아요. 책의 주요 내용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정의가 뭔지 아이들을 위해서 변론하는 형식인데, 법정이 아니라서 변명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법정에서 ‘호통’ 치는 진짜 이유는 뭔가요?

“소년 재판의 경우, 한 아이에게 할애된 3~5분 정도로는 시간이 너무 적어요. 2016년에 일본 교토가정재판소로 재판 참관을 갔었는데, 재판 한 건을 한 시간 동안 진행합니다. 아이들을 충분히 설득할 시간이 생기면, 재판장에서 호통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 사정은 달라요. 아이들한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는 호통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판사가 체통 없이 호통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라’고 아이들한테 얘기합니다. 왜 반복해서 비행하고 법정에 서느냐고, 왜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느냐고 호통치면서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줍니다. 결과적으로 다시는 법정에 서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호통을 치는 것이죠.”

-여전히 ‘컵라면 재판’이 진행되고 있나요?

“그나마 요즘은 상황이 좋아졌습니다. 출산율이 감소한 탓에 2013년에 견줘 지난해 부산가정법원 소년 재판 사건 수가 40%나 줄어들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재판 시간은 부족합니다. 한 재판당 10~15분 정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영상] 천종호 “벼랑 끝 아이들, 이용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국내 사법기관에서 유일하게 8년간 소년 재판을 맡은 법관입니다. 소년 재판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2010년 6월 창원지방법원에서 우연히 소년 재판을 맡았습니다. 3년 뒤 전문법관을 신청해 부산가정법원에서 5년 동안 소년 재판을 담당했습니다. 소년 재판을 맡고 보니까, 실상이 너무나 열악했어요. 당시 평균 120명 정도의 아이들을 재판하게 됐어요. 누군가 ‘컵라면 재판’이라고 할 정도로 한 아이당 3분 정도 안에 재판해야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비행 청소년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해요. 누구도 그들을 대변해주지 않죠. 제가 소년범 아이들에 집중하는 건, 이 아이들에 대한 처우가 높아지면 그 위에 아이들을 위한 처우도 자동적으로 올라갑니다. 또 우리 사회 전체 수준이 올라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되면, 모든 아이들이 함께 혜택을 누릴 수 있고요. 그렇게 되도록 하고 싶었어요.”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계기로 소년법 폐지 목소리까지 나왔습니다. 청소년들이 더 잔인해진 걸까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부산 중학생 폭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청소년 범죄가 더 잔혹해진 것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범죄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게 상식인데, 아이들은 가해 사실을 스스로 공개했어요. (재판하면서) 더 잔혹한 사건을 많이 겪었습니다. 만약 그 사건들이 언론에 노출됐다면, 국민에게 더 공분을 샀을 거예요. 최근 재판에서 만난 아이들을 보면, 과거보다 참을성이 부족해졌다는 걸 느낍니다. 온라인 게임이나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 중독으로 아이들이 인내하는 법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자연환경이 좋은 시골에 가봐도 아이들이 그런 환경을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같이 놀 친구가 없기 때문이죠. 뛰어놀 곳이 많은데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이 찾게 되는 게 피시(PC)방입니다. 그로 인해서 인터넷 노출 가능성이 크고 중독으로 갈 가능성도 커져요. 요즘엔 책상에만 앉으면 인터넷에 접속해 중독될 수 있는 기기들이 많아서 주의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 남학생이 여성의 치마를 들치고 성추행하다 재판을 받게 됐어요. 그 학생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휴대전화도 주지 않고, 컴퓨터를 사주지도 않아서 음란물을 접할 요소가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며 황당해했어요. 학교에서 다른 친구의 휴대전화를 통해서 음란물을 보게 된 것이죠. ‘사이버 중독’은 내 아이만 지켜서는 안 되고, 사회 전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돼요.”

-부산 중학생 폭행 사건을 계기로 “소년법을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개정해야 할까요?

“충격적인 범죄가 발생하면 엄벌을 주장하는 여론이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다만, 소년법 폐지로 인한 부작용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만약 법의 폐지나 개정을 한다면, 불이익을 당할 당사자(미성년자)들에게 의견 제시의 기회를 보장해줘야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성인과 똑같은 수준의 법적 책임을 묻는 만큼 그들의 자유와 권리 또한 충분히 보장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형법상 사형 또는 무기징역 선고는 만 18살 이상이면 가능한데, 현재 18살 청소년들에게는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고 있어요. 형법과 공직선거법만 놓고 보면, 평등 원칙이나 법치주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성년자를 성인과 동등하게 취급해 일정한 범죄에 대해서 사형이나 무기징역형까지 선고하는 법체계를 만드는 것은 위헌 소지가 크다고 봅니다.”

“소년범의 인성과 사회성 키워줄 수 있는 대안 가정이 필요하다”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장. 사진 우리학교 출판사 제공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장. 사진 우리학교 출판사 제공

-비행청소년 문제 해결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뭘까요?

“이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되려면 결국 필요한 것이 사회성과 인성입니다. 예를 들어, 이 아이들이 소년원에서 기술을 배워서 나오면, 취직해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데요. 사회성이 떨어지다 보니까, 직장에서 버텨내는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일반적인 아이들의 경우, 사회 초년병 때 어려움을 겪어도 때마다 누군가 옆에서 도와줍니다. 친구들도 위로해주고, 부모님이 가정에서 다독거려주면 마음의 힘을 얻어서 직장에서 안정되는 시기가 오거든요. 그런데 비행청소년들은 그런 인성도 안 되고 친구들도 적고, 부모들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들의 멘토가 될 사람이 없어요.

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성이나 사회성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저는 소년원 같은 폐쇄적 공간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아이들 스스로 사회성과 자율성을 길러서 사회에 나와서도 누구의 도움 없이 자립해서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데, 소년원에서 규율적 통제에서 아이들이 생활하다 보니까 밖에 나오면 자율성이 없어 무척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래서 (소년원 같은) 집단 시설보다 인성과 사회성을 함양할 수 있는 소규모 대안 가정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던 것이죠.”

-일각에서 ‘전문법관 제도’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는데요.

“아동·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영역에 대해서는 특히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하거든요. 소년 재판의 경우도 단순히 법리적으로 접근해서는 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소년 재판은 마음으로 하는 재판입니다. 퇴직 이후에 큰 보상이 따르지 않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하는 소년 재판 영역에 대해서는 전문법관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말고도 소년 재판 전문법관을 계속하려는 분들이 계신데요. 이런 사정을 고려해서 인사 발령을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 다시 소년 재판으로 복귀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태인데요.

“소년 재판만 다시 하게 된다면 언제든지 돌아갈 생각이 있습니다. 야전 사령관으로서 정년퇴직을 맞고 싶거든요.” (웃음)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울엄니 만나러 가요 굿바이” 김수미 직접 쓴 유서곡 1.

“울엄니 만나러 가요 굿바이” 김수미 직접 쓴 유서곡

‘친윤의 한동훈 낙마 프로젝트’ 유포자 5명 검찰 송치 2.

‘친윤의 한동훈 낙마 프로젝트’ 유포자 5명 검찰 송치

[단독] 도이치 2차 주포 옥중편지, 김건희 포함 “초기 투자자 Exit 시켜줬다” 3.

[단독] 도이치 2차 주포 옥중편지, 김건희 포함 “초기 투자자 Exit 시켜줬다”

임금 59억원 체불한 대표 밖에선 ‘기부천사’…익명 신고가 잡았다 4.

임금 59억원 체불한 대표 밖에선 ‘기부천사’…익명 신고가 잡았다

“동성혼 막은 거룩한 나라로” 예배 가장한 혐오…도심에 쏟아졌다 5.

“동성혼 막은 거룩한 나라로” 예배 가장한 혐오…도심에 쏟아졌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