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하 철도노조 케이티엑스승무지부장이 29일 오전 대법원 대법정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절차대로 하세요.” “절차대로 하면 (대법원장을) 못 만나니까 우리가 이럴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법에 따라서 하셔야죠.” “우리가 지금 법을 믿을 수 있는 상황입니까?”
29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대법정에 파란색 조끼를 입은 여성 열 명이 들어섰다. 대법정 진입을 막으려는 법정 경위 10여명과 몸싸움을 벌인 뒤다. ‘케이티엑스(KTX) 전원복직, 직접고용’이라 적힌 조끼를 입은 김승하 케이티엑스 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의 손에는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요청서’라 적힌 노란색 서류 봉투가 들렸다.
KTX열차승무지부와 KTX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이날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며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케이티엑스 해고노동자들이 29일 오전 대법원 대법정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사법권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의 조사보고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재판을 두고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해당 재판에는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로 KTX 해고승무원 관련 판결도 포함됐다. 12년 전 KTX 승무원 해고된 승무원들은 ‘근로자 지위’를 확인해달라며 단식, 고공농성 등을 하다 마지막으로 법원을 찾았다. 2008년 11월 첫 소송을 제기하고 1·2심에서 승소했지만 2015년 대법원은 이들이 “철도공사의 정규직이 아니다”라며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판결 직후 승무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승하 케이티엑스(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은 이날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오늘로 4473일째 싸우고 있습니다. 서울역 서부에 천막을 치고 승객 안전을 담당하는 KTX 승무원으로 돌아가겠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누구 때문인가요. 취업 사기를 당한 저희는 싸움을 했고 싸움에 지친 우리는 사법부 판단에 맡겼습니다. 그런데 대법원마저 정권과 야합해 청와대 대통령 뜻에 따랐고 수많은 여성노동자의 꿈을 짓밟았습니다. 저희는 이 자리에서 이렇게 외치고라도 있지만 저희 친구들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 잃어버린 13년 세월 꼭 돌려놓으십시오.”
김 지부장과 더불어 기자회견에 참여한 아홉명의 승무원과 천주교, 불교 조계종 관계자 등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국회에 양 전 대법원장과 대법원 관계자에 대한 청문회를 여는 한편 “대법원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확답을 들어야 한다”며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법원 관계자와 협의로 대법정을 빠져나온 이들은 대법원 1층에서 오후 1시 기준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법원 점거 농성은 최초다. 대법원장 비서관이 대신 면담요청서를 받아 전달하겠다는 법원측에 해고승무원이 말했다. “12년 동안 해결한다는 그 말만 믿고 기다렸습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 같이 싸우던 친구가 죽었습니다. 저희 문제를 판단한 대법원장 못 만날 이유가 있습니까. 저희 13년 세월 돌려놓으십시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