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 청년유니온 초대위원장, 불법촬영 피해자 도와
“성범죄 원인을 피해자 탓하는 주변 반응 슬펐다”
“성범죄 원인을 피해자 탓하는 주변 반응 슬펐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 붙은 불법촬영 주의 공고문.
김영경 씨 페이스북 글 전문
슬프게도… 좀 전에 몰카 현행범을 잡았다…
하소연이라도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아서 남긴다 .
귀갓길 . 지하철역에 내려서 우리 집 방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
내 앞에 남자 , 그 앞에 치마를 입은 여자가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
무심히 앞을 봤는데 아무래도 남자의 손짓이 이상했다 .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가 다시 확인하고 다시 내밀었다가 확인하고 . 세 , 네 차례 반복하였다 .
이상해서 관찰하였는데 처음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장난을 치는 건가 했다 .
하지만 에스컬레이터 정상에 오르자 여자분은 반대 방향으로 갔고 그 남자는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 사람의 가방을 잡으며
지금 뭐 하신 거세요 ? 라고 물었다 .
그러자 그 사람이 내 손을 뿌리치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
너무 빨라서 역부족이었다 .
계속 쫓아가면서 , 잡아주세요 ! 제발 잡아주세요 ! 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
하지만 그 사람이 너무 빨라서 몇 분의 남자들이 시도했지만 잘 잡지 못했다 .
그러다 그 사람보다 덩치 큰 남자분이 잡으려고 시도했고, 불리하다고 느꼈는지 그 사람은 신호가 걸려 차가 정지한 도로로 뛰어들어 맞은편으로 달렸다 .
순간 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이 개새끼야를 외쳤다 , 정말 억울했다…
근데 그 맞은편은 버스 정류장이었고 다행히도 사람들이 많았다 . 남자 두 분이 뛰어와 주었고 그 사람은 내가 있는 쪽으로 다시 방향을 트는 와중에 그 남자들에게 잡혔다 .
쫓아가서 그 사람 핸드폰을 뺏어야 한다고 거의 울부짖었다 . 그 사람을 잡은 한 남자분이 핸드폰을 뺏어서 내 손에 쥐여 주었다 .
내가 경찰서에 신고 좀 해 주세요 라고 외쳤는데
옆에 있던 여자분이 자기가 신고하겠단다 .
순간 눈앞이 노래졌다 , 바로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
그분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큰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몰리자 도와주려고 했던 것이다 .
다급한 마음에 그분에게 가서
방금 저 출구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지 않으셨냐고 했더니 맞다고 했다 . 그래서 당신이 찍힌 것 같다고 , 제가 목격자라고 했더니 그분이 어찌할 바를 모르셨다 .
그때 옆에 서 있던 다른 여자분이 자기가 신고했다며 곧 경찰이 온다고 했다 .
조금 있다 경찰이 왔고 현행범을 먼저 데리고 갔다 .
다른 경찰차를 타고 혼자 이동해야 할 그 피해자가 안쓰러워 가보니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
경찰에 신고한 분이 피해자 어깨를 도닥이고 있길래
친구세요 ? 라고 하니 아뇨 , 모르는 분이에요 한다 .
근데 그 사람도 이미 울고 있었다 .
그 순간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대화를 하지도 않았는데 생면부지의 그 여성분은 함께 울고 있었다 .
좀 있다 피해자를 태울 경찰차가 왔고 , 신고한 분과 나는 응원을 하며 그녀가 차를 타는 모습을 지켜봤다 .
그렇게 수습이 되고 돌아서는데 역 앞 포장마차 아저씨가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
여자도 잘못이 있네 .
기진맥진해서 그냥 돌아서는데 서러웠다 .
다음에 저 집에 꼭 오뎅 먹으러 가서 아저씨랑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독한 마음도 먹었다 .
하지만 걸어가는데 온몸이 떨렸고 그제야 공포가 밀려왔다 .
그 찰나에 , 온 세상이 미웠다 .
그럼에도 그 범인을 잡아준 사람들도 남성들이고 ,
피해자가 경찰차를 타고 가야 할 때 경찰에게 지인이 없어서 혼자 가야 하는 데 불안하지 않겠냐며 끝까지 있어 준 사람들 중에는 남성들도 있었다 .
그 사람이 미울지언정 모든 사회 , 모든 사람 , 특정 성별을 온전히 미워하지 말자고 계속 심호흡 중이다 .
돌아오는 길에 , 귀신처럼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
진정이 되지 않아 부러 받지 않았다 .
언제면 이 서러운 마음들이 가실 수 있을까 ?
23일 서울 지하철 연신내역 내부 에스컬레이터 모습.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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