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광장에서 조양호 일가 퇴진촉구 2차 집회
“이번 비행은 갑질로 심한 기체 요동 예상되지만
탑승객 안전 위해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화기애애 분위기 속 800여명 “불법행위도 처벌”
12일 저녁 서울역 광장에서 대한항공 직원연대가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2차 촛불집회를 열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조양호 대한항공 총수일가의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지난 4일 첫 촛불집회를 연 뒤 1주일 만에 서울역 광장에 다시 모인 대한항공 직원들은 “조양호 총수 일가의 불법 행위와 갑질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각종 불법행위로 얼룩진 총수 일가와 경영진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대한항공 직원과 시민 등 800여명(주최쪽 추산)은 12일 저녁 7시30분 서울역 광장에서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근절 2차 촛불집회’를 열어 총수 일가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 외에도 한진칼 그룹과 계열사직원, 인하대학교 학생들도 참여했다. 인하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정석인하학원은 조양호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고, 조 회장의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이사로 있다.
서울역광장에 모인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은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도 2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땅콩회항’ 피해자이자 이번 집회의 사회를 맡은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은 “지금의 대한항공 사태는 결코 물컵이나 땅콩 같은 ‘갑질’ 문제뿐만이 아니다”며 “명백한 불법행위를 자행한 경영진과 한진 그룹의 문제이며, 시민들과 함께 대한항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저항의 의미를 담은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대한항공 직원들은 집회에서 “물러나라 조씨 일가, 지켜내자 대한항공”, “조양호는 물러나라 이명희는 감옥 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12일 저녁 서울역 광장에서 대한항공 직원연대가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2차 촛불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집회에서는 직원들의 자성과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마스크를 쓰고 무대에 오른 대한항공의 한 승무원은 “회사에서 승무원을 감축한다고 통보했을 때, 임금을 삭감한다고 통보했을 때 우리는 ‘일단 우리의 일을 해야 한다’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우리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지금부터라도 경영진이 지시하는 대로 ‘그저 알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복을 입고 무대에 나선 대한항공 운항승무원은 “승무원들이 밤을 새워가며 비행하고 일할 때, 노동자들의 목에 빨대를 꽂고 이윤을 가져간 사람들이 누구냐. 이번에 반드시 조씨 일가를 퇴진시켜 직원들을 위한 회사로 대한항공을 되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2일 저녁 서울역 광장에서 대한항공 직원연대가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2차 촛불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승무원들의 재치있는 발언도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한 운항 승무원은 무대 위에서 기내 방송을 패러디해 “아직 시위에 탑승하지 못한 조합원들께서는 어서 빨리 탑승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비행기는 사측의 말도 안되는 경영과 조씨일가의 갑질로 심한 기체 동요가 예상됩니다. 운항 승무원들은 탑승객의 안전을 위하여 끝까지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하는 바입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창진 전 사무장은 “조양호 회장과 경영진이 퇴진해야 직원들이 힘내서 일터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외치는 대한항공 직원에게 “마카다미아는 던지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입니다”라며 마카다미아를 선물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지난 3월 보도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세례’ 갑질은 총수 일가의 불법 행위를 고발하는 대한항공 직원들의 움직임으로 번졌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꾸려 총수 일가의 불법 밀수?탈세, 필리핀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의혹 등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고 있다.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는 11일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해 필리핀 가사도우미 관련 기록을 확보해 수사중이다. 서울남부지검은 조양호 회장이 수백억원대의 상속세를 내지 않은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공사 관계자 등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고, 지난 9일 이 이사장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11일 오전 ‘물세례 갑질’을 벌인 조현민 전 전무를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