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아 기자의 베이비트리] 놀이 전문가 3인이 말하는 ’놀 권리’
유니세프 한국위-성북구청 국제포럼
발제 이어 따로 대담 자리
유니세프 한국위-성북구청 국제포럼
발제 이어 따로 대담 자리
4일 서울 동덕여자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2018 놀이정책 국제포럼’에 참석한 일본 아마노 히데아키(왼쪽) 모험놀이터만들기 총괄이사와 영국 팀 길(가운데) 놀이 컨설턴트, 한국 편해문 놀이 활동가가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끝낸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갈수록 아이 통제 심해 사실상 감금
모험과 책임감 키울 기회 사라져
아동 친화적인 인프라 구축 더 중요” “심하게 말하면 인체실험” “최근 수십년 동안 전 세계 어린이의 자유가 점점 축소되고 있습니다. 한 국제 연구에서 같은 고향에서 산 4세대 8살 어린이의 이동 반경을 조사했어요. 증조할아버지가 이 고향에서 6마일 정도를 돌아다녔다면, 할아버지 세대는 1마일 정도 이동했어요. 엄마 세대는 0.5마일, 아들 세대는 거의 집 근처만 돌아다닐 수 있어요. 어른들은 갈수록 아이들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많은 아이가 감금된 채 키워지고 있어요. 아이들의 세계에서 모험이 사라지고 있고, 자유를 맛보고 책임감을 키울 기회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팀 길이 슬라이드로 4세대에 걸쳐 축소된 아이들의 이동 반경을 지도에 표시해 보여주었다. 참석자 중 일부는 “아~”라는 짧은 탄성을 질렀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지 여부가 ‘놀 권리’나 ‘자유’와 연결된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하다가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셈이다. 팀 길은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과 런던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뒤 아동의 놀 권리 옹호를 위해 수십년 동안 노력해왔다. 독립 연구가인 그는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아동친화적인 도시 계획’을 조사하고 연구했으며, 현재는 영국 정부의 놀이 정책인 ‘플레이 잉글랜드’의 감독이다. 길은 “놀이 자체보다는 아이들의 ‘일상에서의 자유’를 좀 더 이야기해야 하고, 개별 놀이터 개선보다는 아동 친화적인 인프라 구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의 놀 권리’에서 말하는 ‘놀이’는 아이가 스스로 자유를 맛보고 탐험하고 모험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번 포럼에서는 ‘놀이’보다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오갔다. 일본 모험놀이터 전문가 아마노 히데아키는 아이들의 놀 시간 부족과 자유의 축소가 만들어낼 암울한 미래에 대해 경고했다. 일본 모험놀이터 총괄이사 아마노
“아이는 놀지 않으면 마음이 죽어
스스로 생각하고 배려하지 못해
아이들은 어떻게 자랄지 알고 있어” “아이들은 놀지 않으면 죽어요. 마음이 죽어요. 아이들이 놀면서 ‘아~ 너무 재밌어~’라는 마음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부모의 눈에서 벗어나 그렇게 놀기 힘들어요. 아이들에게 자유를 빼앗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인체실험’이에요. 독재라든지 사상 통일과 다르긴 하지만, 아이들이 놀지 못하면 그러한 상태가 됩니다. 지금처럼 아이들이 놀지 못하면, 스스로 생각을 하지 못하는 아이와 남을 배려하지 않는 아이가 늘어날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죠.”
전남 순천시 연향2지구 호반3공원에서 있는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에서 어린이 들이 뛰어놀고 있는 모습이다. 도심 속에 녹지를 조성하고, 자유롭게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이 놀이터는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한 곳이다. 순천 기적의 놀이터가 만들어진 뒤, 이 지역 아이들은 더 자주 놀 수 있게 됐다. 순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대로 해보고
위험 만나봐야 화복탄력성 커
이제는 실행해 실제 변화 일어나야” 길은 아이들의 의견을 도시 설계에 반영해 아동 친화적 인프라를 구축한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대표적인 곳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다. 그는 “지난 12년간 로테르담은 네덜란드에서 아이를 키우는 데 가장 최악인 곳으로 꼽혔다”며 “사람들이 자꾸 도시를 빠져나가면서 세금 부족 문제를 겪게 되자, 로테르담은 가족 우호적인 도시로 변신하기로 결단했다”고 말했다. 로테르담은 차량을 줄이기 위해 도로를 재설계했다. 도심에 광장을 만들었다. 텅 비어 있거나 주차 공간으로 쓰던 학교 운동장에 꽃과 나무를 심고 놀이적 요소를 배치했다. 저녁이나 주말에는 운동장을 개방해 사람들이 놀도록 했다. 산책로도 개선했다. 표지판을 약간 바꿔서 보물찾기 하는 기분을 주었다. 상상의 동물을 찾는 것처럼 했다. 자전거길도 개선했다. 길은 “이런 개선과 발전이 일어난 뒤 로테르담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아이들을 위한 기반 시설이 만들어낸 변화”라고 말했다. ‘노는 거리’ 100개국으로 번져 이외에도 벨기에의 도시 겐트에서도 사람들이 자동차에서 벗어나 걷거나 저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역 교통량을 60%나 줄였다.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는 어린이들이 학교에 안전하고 편하게 갈 수 있도록 꽤 많은 돈을 투자해 스마트폰 앱을 개발했다. 이 앱을 통해 아이들이 등굣길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보고했다. 이 앱을 관리하는 팀은 교통을 개선할 수 있는 예산을 관리했는데, 아이들의 의견을 받아 동네와 학교를 잇는 새로운 길을 만들고 등굣길의 나무를 다듬기도 했다. 영국 런던 역시 수백만파운드를 들여 공원과 거리를 만드는 등 아동 친화 인프라 구축에 투자했다. 또 영국에는 ‘플레이 스트리트’(노는 거리)가 있는데, 엄마 두 명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일주일에 몇번 정해진 시간에 교통을 통제하고 부모와 아이가 나와서 ‘노는 거리’를 만들었다. 작은 아이디어가 전 세계로 퍼져 현재는 ‘플레이 스트리트’가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100개국에서 진행된다. 세 전문가는 ‘놀이 피라미드’의 네 요소 가운데 ‘어른들의 태도’를 가장 우선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마노는 대담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놀이의 힘이 무엇인지, 어른들이 하는 교육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어른들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언론도 더 효과적으로 이에 대해 알려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만 생각해요.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자랄지 다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나는 이렇게 크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아이들을 방해하지 말고, 아이들이 말할 기회를 주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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