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무근→10만달러 받아→4억도 받아
진술 바꿔 특활비 7억 중 2억만 부인
목격자·관련자 많아 수수 불인정땐
‘불리한 증인채택 우려’ 판단한 듯
법조계 “허위진술, 형량 악영향” 지적
진술 바꿔 특활비 7억 중 2억만 부인
목격자·관련자 많아 수수 불인정땐
‘불리한 증인채택 우려’ 판단한 듯
법조계 “허위진술, 형량 악영향” 지적
‘권력형 비리는 없었다’(1월17일) → ‘10만 달러는 수수’(3월14일) → ‘4억원도 수수’(5월3일)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이명박(77)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서 받은 돈과 관련해 잇따라 태도를 바꾸고 있어 그 배경이 주목된다. 법조계에서는 불리한 증인 채택을 막고, 비교적 ‘약한 고리’를 찾아내 검찰 수사에 흠집을 내려는 재판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연이은 말바꾸기가 향후 재판에서 이 전 대통령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4일 이 전 대통령 공소장을 보면 그가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뇌물 7억원은 △2008년 3~5월 2억원 △같은 해 4~5월 2억원 △2010년 7~8월 2억원 △2011년 9~11월 10만 달러 등 네 부분으로 나뉜다. 지난 1월12일 검찰이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을 압수수색하며 자신을 향한 수사를 공식화했을 때만 해도, 이 전 대통령은 ‘국정원 자금 수수’ 자체를 부인했다. 닷새 뒤 연 기자회견 때도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3월14일 소환 조사 때 이 전 대통령은 10만 달러를 받은 부분은 인정했고, 지난 3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는 변호인단을 통해 첫 2억원(2008년 3~5월)을 받은 대목만 부인했다. 나머지에 대해선 받은 돈이 뇌물인지는 다투겠지만, “사실관계(자금수수)를 다투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0년 받은 2억원뿐 아니라 두 번째 2억원(2008년 4~5월)도 받은 사실 자체는 검찰의 용도 입증을 조건으로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이번 수사와 관련이 없는 검찰의 한 관계자는 “공소사실을 인정 안 하면 자신에게 불리한 증인들에 대한 신문이 공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 망신당할 수 있다는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인정한 10만 달러 부분은 돈 전달에 관여한 ‘목격자’들이 많다.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은 물론 국정원 예산관, 김희중 제1부속실장 그리고 대통령 관저 가사담당 직원마저 ‘문제의 돈’이 이 전 대통령 쪽에 전달된 사실을 검찰에서 진술한 바 있다. 두 번째 2억원(2008년 4~5월) 부분도 당시 김주성 국정원 기조실장이 류우익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국정원 돈이 청와대에 전달되는 건 문제”라고 하는 등 돈 전달을 뒷받침할 관련자들이 많은 상황이다.
이에 비해 첫 2억원(2008년 3~5월)은 당시 김성호 국정원장이 이 전 대통령에게 돈을 직접 전달했다는 것이 공소사실이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유일한 목격자’인 김 전 원장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이 전 대통령 수사팀은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 돈을 받아 사용한 청와대 관계자들이 해당 2억원을 “국정원 돈”이라고 진술한 만큼 입증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 돈에 대해 3번 다른 말을 했는데 적어도 2번은 거짓말이 된다”며 “당장 특정 증인 채택은 피할 수 있을진 몰라도 향후 형량 등에 있어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이 전 대통령 쪽은 <한겨레>에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이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일은 없지만, 공적으로 쓸 필요가 있어 (청와대가) 국정원 돈을 쓴 것이라면 다투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공소장 내용이 사실은 아니지만, 부하들을 위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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