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4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한진그룹 총수인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을 규탄하고 조 회장 일가의 경영 일선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켜내자 대한항공!”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습관적 갑질에 참다못한 ‘을’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의 자발적 모임인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4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스톱(STOP) 촛불집회’를 열었다. 검은색 대한항공 유니폼과 파란색 정비복을 입고 가면과 두건을 쓴 대한항공 직원들은 촛불을 들고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노래를 부르며 조 회장 일가의 갑질 횡포를 규탄하며 처벌을 요구했다.
조 회장 일가의 갑질 횡포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영화 <브이 포 벤데타> 가면을 쓴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과 시민 500명(경찰 추산, 직원 350명·시민 150명)은 광장에서 “조씨 일가 욕설 갑질 못 참겠다”, “갑질왕자 조양호는 퇴장하라, 갑질폭행 이명희를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의 사회는 2014년 ‘땅콩회항’ 사건 당시 피해자인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맡았다. 대한항공 직원연대 단톡방을 만들고 이날 집회까지 주최한 필명 ‘리자’(관리자)는 집회에 참석했지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집회 참석자들은 ‘리자’에게 “관리자 고맙다, 끝까지 함께한다”고 응원했다.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들이 4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한진그룹 총수인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을 규탄하고 조 회장 일가에게 경영 일선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른 대한항공 직원들은 ‘회사 정상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 “10여년 전 박창진 전 사무장과 한 팀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밝힌 한 승무원은 “직원들은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경영진이 그 이미지를 망가뜨렸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대한항공이 다시 자랑스러운 항공사가 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손에 엘이디(LED) 촛불을 들고 집회에 참여한 14년차 대한항공 조종사 ㄱ씨는 “일련의 사태는 대한항공의 위기가 아니라 총수 일가의 위기”라며 “이번 기회에 총수 일가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대한항공을 더 좋은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ㄱ씨는 “대한항공 직원들 대부분이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들 이번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고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집회에는 대한항공 직원의 가족과 시민들도 참석해 힘을 보탰다. 직원 가족이라고 밝힌 ㄴ씨는 “일하는 게 힘들다고 말하는 가족에게 ‘그냥 참고 다니라’라고 말해왔는데 회사에서 이런 갑질을 겪는지 몰랐다”며 “작은 힘들이 모여서 존경받고 자랑스러운 대한항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대한항공 ‘모닝캄’ 회원인 한 시민은 직원들에게 편지를 써서 나눠줬다. 그는 편지에서 “대한항공 직원들의 정당한 주장이 이번 기회에 제대로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저녁 7시 무렵에는 절반 정도 찼던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은 어두워질수록 뒤늦게 도착한 대한항공 직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길을 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면서 주변 인도까지 사람들로 가득찼다.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앞으로도 집회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서경찰서는 이날 광고대행사 직원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조 전 전무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이를 기각했다. 경찰은 “대한항공 쪽에서 수습 방안을 논의하고 피해자 쪽에 접촉해 말맞추기를 시도한 정황이 확인되는 등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신청 이유를 밝혔으나, 검찰은 “폭행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고, 관련 증거들도 이미 확보되어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을 고려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조 회장 일가는 현재 밀수·탈세 의혹도 제기돼 관세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