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검사를 성추행하고 이후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를 받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안 전 국장에 대한 영장은 이날 기각됐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1월29일, 국내에서 본격적인 ‘미투 운동’의 출발점으로 기록될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가 나왔다. 그로부터 이틀 뒤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이 출범했고, 오는 26일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며 80여일의 활동을 마무리한다. 범죄 혐의가 드러난 전·현직 검사를 재판에 넘기는 성과도 있었지만, “검찰 문화를 뿌리째 바꾸겠다”는 애초 비장한 결기는 수십년 쌓여온 편견과 조직 논리에 따른 비협조에 막혀 고전을 거듭했다. 이른바 ‘폭탄주’로 상징되는 단단한 마초 문화를 깨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24일 성추행 조사단은 3년 전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한 후배 검사를 성추행한 혐의(강제추행 등)로 전직 검사 ㅈ씨를 불구속기소하고 그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했다. 성추행 직후 ㅈ씨가 사표를 내고 ‘조용히’ 검찰을 떠날 수 있게 된 배경에 무엇이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조사단 활동이 무기력했다는 점은 최초 폭로자인 서지현 검사가 지목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한 수사 과정을 보면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사단은 인사에 불이익을 준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를 받는 안 전 국장을 기소하기로 하는 등 6명을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했지만, ‘은폐 의혹’ 등 제기된 의문을 속 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2차 가해’라는 심각한 문제만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서 검사 폭로 직후 검찰 내부에는 “서 검사가 무리한 인사 요구를 했지만 안 받아들여지자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는 취지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이 급속도로 퍼졌다. 견디다 못한 서 검사는 결국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며 자신을 비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쓴 ㄱ부장검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의뢰했다.
‘피해회복’이라는 조사단 명칭에도 불구하고, 조사단은 2차 가해자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문제가 된 페이스북 글은 이미 삭제됐고, 이 글을 봤던 검사 중 누구도 나서서 ‘증언’하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검찰 내부에서는 “서 검사처럼 다른 사람도 서 검사를 자유롭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지난 2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2차 피해는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실제론 검찰 내부 문화가 ‘미투’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조사단은 오는 26일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며, ‘2차 가해’ 관련자에 대한 징계를 의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2010년 성추행 사건 처리 과정과 관련해 서 검사가 폭로 당시 제기한 은폐 의혹도 제대로 조사가 진행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 검사는 소속 검찰청 선배 검사 등과 의논해 성추행은 문제 삼지 않고 안태근 전 검사장의 사과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지금껏 사과를 받지 못했다. 2010년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내며 서 검사 성추행 사건 감찰을 무마했다는 의혹을 받은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은 출석 조사를 둘러싸고 수사팀과 실랑이 끝에 서면조사만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서 검사가 근무했던 검찰청의 차장검사였던 현직 고검장도 조사 요청을 받았지만, 서면조사로 마무리됐다. 검찰 관계자는 “징계시효와 공소시효가 훌쩍 지나버려 조사단이 조사를 밀어붙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한편, 조사단은 서 검사에 대한 인사 불이익 의혹과 관련해 법무부 검찰과에서 일했던 검사의 근무지를 압수수색했고, 이 과정에서 그가 개인적으로 컴퓨터 저장장치에 보관하던 검사의 사생활이나 소문을 담은 ‘인사 세평’ 문건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 역시 처벌을 하지 않는 쪽으로 잠정결론 내렸다고 한다. 한 부장검사는 “세평 문건이 나왔다고 해서 법무부 검찰과의 인사 전횡이 드러날까 했는데, 결국 조직 보호 논리가 작동한 거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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