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구속영장 발부 뒤 1시간여 뒤 호송차량 올라
측근들과 인사 나눈 뒤 동부구치소행
자택 주변 시위대 “측근들도 구속하라” 외치기도
구속영장 발부된 뒤 페이스북에 자필 심경문 올려
“모든 것은 내탓…자책감 느낀다”
“참 모습을 되찾고 할 말을 할 수 있으리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검찰 호송차량에 오르기까지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3년 퇴임한 뒤 햇수로 6년만에 뇌물수수·횡령 등 12개 혐의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미결수용자’ 신분이 되어 동부구치소로 향했다.
23일 새벽 12시1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 신봉수 첨단범죄수사1부장과 손경호 특수2부장,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서울 논현동 자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이 논현동 자택에 도착한 22일 밤 11시56분 이후 불과 5분만에 자택을 나선 것이다. 정장 차림에 검은 외투를 입고, 검은 안경을 쓴 이 전 대통령은 호송차량을 둘러싸고 도열한 측근들 가운데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등과 짧게 악수를 나눈 뒤 바로 호송 차량에 올라탔다. 이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심경이 어떠시냐”, “정치 보복으로 생각하시냐”등의 취재진의 질문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채 서울 동부구치소로 향했다. 자택 인근에 모인 30여명의 시위대는 호송 차량이 떠나기 전까지 “엠비 구속됐다”, “측근들도 구속해라”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 전 대통령은 자택을 나서면서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지만, 대신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필 심경문 3장을 올려 구속에 직면한 심경을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이 입장문에서 “누굴 원망하기 보다는 이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심정이고 자책감을 느낀다. 지난 10개월 동안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휴일도 없이 일만 했던 사람들이 나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며 측근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 전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바라건대 언젠가 나의 참모습을 되찾고 할 말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 글은 지난 21일 새벽 작성한 것으로, 구속에 대비해 미리 작성한 뒤 구속영장 발부에 맞춰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구속영장 발부에 대비해 이 전 대통령의 자택을 찾은 측근들은 검찰 수사가 ‘정치 보복’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오후 5시께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았고, 저녁 8시께에는 이동관 전 홍보수석비서관과 권성동,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자택으로 들어섰다. 영장이 나오기 전인 밤 10시30분께 자택을 나선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은 지금까지 엠비를 감옥에 보내기 위해서 엠비 측근 100여명을 소환조사해왔다. 이것은 명백한 정치 보복이자 정치 활극”이라며 “정의로운 적폐청산이라면 노무현·디제이 정부의 적폐도 함께 조사해야한다. 오늘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검찰이 또하나의 적폐를 만든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나오기까지 자택에서 함께 머무른 측근 30여명은 이 전 대통령을 배웅한 뒤 각자 흩어졌다.
한편, 이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를 앞둔 이날 오후 서울 논현동 이 전 대통령의 자택 앞에는 오후부터 내·외신 취재진 100여명이 몰려 구속 상황에 대비했다. 수개월째 자택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민중민주당 당원 한 명만 ‘이명박 구속이라는 문구가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를 이어갔고, 저녁 7시께에는 이명박심판범국민행동본부 소속의 활동가 한 명이 자택 인근에서 “이명박을 구속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다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을 응원하는 지지자들은 없었다. 오후 내내 자택 앞 골목 100여m에 차량을 통제한 경찰은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자택 앞 주변 통행을 통제하는 등 삼엄한 경비를 유지했다.
다음은 이명박 전 대통령 페이스북 심경문 전문.
지금 이 시간
누굴 원망하기 보다는
이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심정이고
자책감을 느낀다.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면,
기업에 있을 때나 서울시장,
대통령직에 있을 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통령이 되어
‘정말 한번 잘 해 봐야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과거 잘못된 관행을 절연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고자 노력했지만
오늘 날 국민 눈높이에 비춰보면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재임중 세계대공황이래 최대 금융위기를 맞았지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위기극복을 위해 같이 합심해서 일한 사람들
민과 관, 노와사 그 모두를
결코 잊지 못하고 감사하고 있다.
이들을 생각하면 송구한 마음뿐이다.
지난 10개월 동안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가족들은 인륜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고 있고
휴일도 없이 일만 했던 사람들이
나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내가 구속됨으로써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가족의 고통이
좀 덜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바라건대 언젠가 나의 참모습을 되찾고
할 말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2018. 3. 21. 새벽
이 명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