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헌씨가 15일 자신의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고문하지 않았다"고 허위 진술한 혐의(위중)로 기소된 전 국군 보안사령부 수사관의 재판을 듣기 위해 법원을 찾았다.
“한 번도 저와 저 이외의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당연히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저지른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5일 낮 서울중앙지법 501호 법정에 ‘재일동포 조작간첩 사건’ 고문 피해자인 윤정헌(65)씨가 섰다. 윤씨는 자신의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고문하지 않았다”고 위증한 혐의로 기소된 전 국군 보안사령부(보안사·현 기무사령부) 수사관 고병천(79)씨 재판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성은 판사의 심리로 이날 열린 고씨의 두 번째 재판에서 윤씨는 피해자로서 발언할 기회를 얻었다. 윤씨는 “제 사건은 30년 전에 일어난 일인데 재심 과정에서 피고인이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모든 것을 ‘안 했다, 몰랐다’며 계속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도 여러명 있어서 그냥 놔둘 수 없다고 생각해 고소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보안사가 여태까지 그런 짓(고문)을 많이 해왔는데 이런 재판을 받게 된 건 이 사람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법정에서 부인하고 거짓말했는데 한 번도 저와 저 이외의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당연히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저지른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윤씨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귀가 잘 안 들리는 고씨는 왼쪽 귀에 손을 대고 윤씨의 말에 집중했다.
고씨의 변호인은 이날 검사 쪽의 모든 증거에 동의하고 혐의도 자백했다. 재일동포 유학생 중 간첩을 색출하겠다는 보안사의 ‘수사근원 발굴 계획’에 따라 고씨가 속한 수사2계는 1982년 11월 이종수씨와 1984년 8월 윤정헌씨를 영장없이 연행했다. 보안사 수사관들은 두 사람에게 간첩 혐의를 자백하라며 철제의자에 앉혀 몽둥이로 때리거나 코에 물을 들이붓고, 엘레베이터 고문 등을 가했다. 간첩 누명을 쓴 윤씨는 재심을 청구했지만, 고씨는 2010년 12월 윤씨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구타나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없지요”라는 검사의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재심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고씨를 잊을 수 없었던 윤씨는 2012년 위증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씨를 고소했고, 검찰은 위증죄 공소시효인 7년(2017년 12월15일)을 이틀 앞둔 지난해 12월13일 뒤늦게 기소했다.
재판이 끝난 뒤 법정 밖에서 윤씨는 고씨와 마주쳤다. “사과하세요”라는 윤씨에게 고씨는 “이번에 사과하려고 했어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법원을 빠져나갔다. “윤씨를 기억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씨는 “재판에서 봐서 기억이 난다”고 답하고 나머지는 다음 번에 말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윤씨는 “사과 한 마디 들으려고 일본에서 왔다. 왜 나를 고문했는지도 꼭 묻고 싶다. 사과를 하더라도 엄중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