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민간인 댓글부대의 불법 정치 활동에 예산을 지원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달 1월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직원들을 동원한 불법 정치·선거 개입 사건으로 함께 재판받고 있는 원세훈(67) 전 원장과 이종명(61) 전 3차장, 민병주(60) 전 심리전단장이 26일 ‘민간인 댓글부대’ 사건으로 또다시 한 법정에서 만났다. 지난해 8월30일 파기환송심 선고 때 마지막으로 법정 조우한 뒤 180일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김상동)는 이날 원 전 원장 등에 대한 속행공판을 열었다. 지난해 10월 먼저 재판에 넘겨진 민 전 단장 사건과 지난해 12월 구속기소된 원 전 원장, 이 전 차장 사건을 지난달 31일 병합한 뒤 열린 첫 재판이다. 원 전 원장은 2010~2012년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외곽팀과 우파단체의 불법 온·오프라인 정치활동에 국정원 예산 65억여원(이종명 48억여원, 민병주 53억여원)을 지원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국고손실)를 받는다.
이들은 2012년 대선 불법개입 등 혐의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 전 차장은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실형을 피했지만, ‘민간인 댓글부대’ 지원 관련 혐의로 지난해 11월18일 구속됐다. 민 전 단장도 같은 처지였지만 지난 23일 보석 청구가 받아들여지면서 구속 157일 만에 석방됐다. 통상 수의를 입고 재판에 나오던 민 전 단장은 이날 하늘색 셔츠에 검은 양복을 받쳐 입고 법정에 섰다. 10여분의 휴정 뒤 먼저 법정에 들어선 민 전 단장은 원 전 원장이 들어서자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가 재판장으로부터 “적절치 못한 행동이니 앞으로 자제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날 재판에는 배우 김여진씨와 문성근씨 합성 나체사진을 만들어 유포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확정판결을 받은 국정원 직원 유아무개씨가 증인으로 나섰다. 그는 “원 전 원장으로부터 사이버외곽팀을 활용해 사이버심리전 대응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이버활동은 애초 북한 대응이 목적이지만, 원 전 원장 부임 뒤 ‘종북세력 비판’으로 변질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원 전 원장이) 2010년 2월부터는 ‘이슈와 논지’(원 전 원장 지시사항이 담긴 업무지침) 외에도 민 전 단장 등을 통해 사이버 활동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도 했다. 이어 증인으로 나온 전 심리전단 직원 황아무개씨도 “사이버활동 계획을 보고한 뒤 원 전 원장이 재가해야만 실행할 수 있었다. (보고 뒤) 비서실에서 ‘오케이’나 동그라미 표시가 있거나 직접 자필로 (메모가) 쓰인 문서가 내려오는 경우가 있어서, 원 전 원장이 (피드백을) 표시한 거로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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