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스북 이용자가 올린 ‘#미투’ 조롱 글. 페이스북 갈무리
“오늘 저도 성희롱당했습니다. 돼지껍질을 주문했는데, 꼭지가 웬 말입니까? 이거 어디다 신고하면 됩니까? #미투”
지난 2일 한 페이스북 이용자가 불판에서 유두가 달린 돼지껍데기를 굽는 사진을 올리며 ‘#미투’라는 태그를 붙였다. 이 글은 삭제됐지만, 그 전에 여러 곳으로 퍼지면서 “#미투를 유머로 소비하느냐”, “인권 감수성 제로” 등 댓글들이 달렸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힘겹게 입을 열기 시작했지만 사이버 공간 일부에선 #미투를 조롱하며 그 의미를 퇴색하게 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용기를 낸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대신 얄팍한 조롱으로 침묵을 강요하는 셈이다.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주로 이용하는 ‘블라인드 앱’에는 지난 1일 #미투 게시판이 만들어졌다. 직장인들의 #미투 동참 글이 많았지만, #미투에 대한 조롱 또한 잇따랐다. ‘여자도 국방의무 이행하는 양성평등 사회 만들자, 동의하면 미투’, ‘미투 이딴 거 좀 만들지마, 극페미’ 등 글이 올라오거나, ‘회식 끝나고 호텔 가자고 졸랐던 상사’에 대한 피해자의 고백에 지어낸 이야기라는 의미로 ‘자작나무 활활’, ‘팩트도 없이 그저 쓰는 게 미투냐’ 등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예비 법조인도 #미투 조롱에 예외가 아니었다. 국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법조인과 로스쿨 재학·수험생들이 가입하는 커뮤니티 ‘로이너스’엔 ‘모든 남자화장실에 들어오는 청소 아줌마들이 강제추행으로 처벌받길 원한다. 미투’, ‘지겹다 #미투, 지친다 #미쓰리’ 등의 글이 올라왔다. 한 페이스북 사용자는 서지현 검사의 방송 인터뷰 장면을 눈 부분만 모자이크해 올리고 ‘범죄 신고는 112, 8년이나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경찰은 3분 거리에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올려놓기도 했다. 서 검사가 8년 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생략한 채 ‘왜 빨리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피해자를 탓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레스토랑에서 일한다는 트위터 사용자 ‘Seol―##’은 트위터에 자신의 경험담을 올렸다. “한 남자 손님이 ‘저는 이걸로 주세요’라고 말하자 다른 일행이 ‘미투’라고 말했다. 그러자 동행인이 낄낄대며 ‘요즘 미투는 그런 뜻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Seol―##’은 “여성들에겐 너무 간절하고 절실한 안전이 일부 남성들에겐 그저 농담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조롱’ 문화가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입을 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진희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피해자의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선 피해자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은 “피해자들에 공감 아닌 조롱을 보내며 자신의 강자성을 드러내는 글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들을 그동안 어떻게 대해왔는지 여실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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