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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커피 재배 20년 실패 눈물이 박사 논문 밑바탕 됐죠”

등록 2018-01-25 18:17수정 2018-01-26 16:24

【짬】 커피박물관 박종만 관장

경기 남양주시에서 ‘커피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커피박사’ 박종만씨.
경기 남양주시에서 ‘커피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커피박사’ 박종만씨.

실패다. 벌써 22년째 실패의 연속이다. 상식적으로 안 되는 일이다. 주변에서는 미친 짓이라고 말린다. 포기하지 않는다. 고집스럽다. 미련하다. 하지만 계속한다. 겨울이 오면 한국의 추운 날씨가 야속하다. 아끼고 사랑하고 정성을 쏟았지만, 서리와 추위 앞에서는 속절없이 죽어간다. 이 땅에서 죽어가는 커피나무를 보며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커피나무가 얼마나 한국의 건조한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가를 연구했다. 이제 커피 박사가 됐다. 하지만 별로 기쁘지 않다. 문제는 추위에 버티는 커피나무를 재배하는 것. 온실이 아닌 자연스러운 한국의 자연환경에서 자라나 열매를 맺는 커피나무를 재배하는 것이 박종만(58)씨의 일생의 과업이다. 불가능할 것 같은 숙제를 스스로 안고 사는 박씨에겐 커다란 자극제가 있었다.

26년 전이다. 일본의 커피 관련 전문잡지였다. 1992년 1월에 발간된 이 잡지를 읽던 30대 초반의 박씨는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를 발견했다. 80대의 노부부가 오키나와에서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커피 재배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온실이 아닌 자연환경에서였다. 당시 전국에 70여개의 커피 체인점을 운영하며 커피에 깊은 관심이 있던 박씨는 일본인 노부부에게 몇차례 편지를 보냈다. 1년 만에 초대받았다. 오키나와에 가서 노부부가 커피를 재배하는 노하우를 엿볼 수 있었다. 커피에 대한 노부부의 열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당시 노부부가 재배해서 만든 일본산 커피는 ‘신세계 1호’, ‘신세계 2호’라는 이름으로 팔렸다. 희소성으로 일본 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커피나무 재배하는 박종만씨
커피나무 재배하는 박종만씨

커피나무 재배하는 온실
커피나무 재배하는 온실

재배한 커피 나무에서 채취한 커피 열매
재배한 커피 나무에서 채취한 커피 열매

한국 기후에서 자라기 힘든 커피
한국 기후에서 자라기 힘든 커피

하지만 한국에서 커피를 재배하기란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높았다. 북위 25℃부터 남위 25℃ 사이의 열대, 아열대와 일부 온대지역이 커피의 주산지다. 이른바 ‘커피 벨트’다. 기온 분포로 보면 영상 11℃에서 26.5℃ 사이여야 한다. 겨울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온실에선 가능하지만 이 커피로는 커피 원산지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박씨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20여개의 커피 생산국을 돌며 커피 종자를 들여와 싹을 틔웠다. 마치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와 떨리는 마음으로 목화나무를 재배하듯이, 박씨는 1996년부터 수백그루의 커피 묘목을 키우며 연구를 했다. 열대과일인 바나나가 한국 땅에서 자라듯, 언젠가는 커피도 자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뒤늦게 강원대 농과대학원에 입학했다.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최근 입학한 지 15년 만에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됐다. 박씨는 커피나무가 접목과 셀레늄 등의 화학물질을 투입해 건조한 기후에 살아남을 수 있음을 이 논문을 통해 입증했다.

22년째 커피나무 키우기 열성
최근 한국의 건조한 기후서
재배 가능 밝힌 박사논문 통과
“이젠 추위 견딜 방법 찾아야
젊은이들 국산 커피 재배 관심을”

남양주서 커피박물관 운영도

“이 논문은 커피나무가 한국 땅에서 자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젠 한국의 추위에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내한성을 연구하는 것엔 엄청난 자금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개인 차원에서는 힘들지 모릅니다.”

고집스러운 커피나무 재배의 배경엔 전세계 교역량에서 원유에 이어 두번째를 차지하는 커피를 언젠가는 한국에서 재배해야 한다는 신념이 자리잡고 있다. 박씨는 한국에서는 커피에 관한 최고의 권위자다. 커피박물관도 운영하고 있고, 커피 관련 책도 저술했다. 1980년대에 이미 원두커피의 상업화에 성공했다.

박종만씨
박종만씨
그가 이야기하는 커피에 대한 잘못된 상식 하나. 흔히 고종 황제가 커피를 처음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피에 대한 역사를 알기 위해 고서적에 빠져들었던 박씨는 영국 한 고서점에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책을 발견했다. 미국의 천문학자였던 퍼시벌 로웰(1855~1916)은 1883년 조미수호통상사절단(민영익, 홍영식, 유길준 등 11명)을 미국에서 안내하고 한동안 조선에 머물렀다. 1884년 1월의 어느 추운 날, 로웰은 조선 고위관리의 초대를 받아 한강변 별장으로 유람을 갔다. 그리고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며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커피를 마셨다고 기록했다. 고종 황제의 아관파천(1896년)보다 12년 앞선 최초의 커피 관련 기록이다.

커피박물관 내부
커피박물관 내부

24일 박씨가 운영하는 경기도 남양주의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에서 그는 커피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언젠가는 수입 커피가 아닌 우리가 노지에서 재배한 커피를 먹는 날이 오도록 젊은이들이 다양한 노력을 하길 바랍니다. 100년 후에도 커피 마시는 이들은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양주/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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