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피디가 1월4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의 쇼룸 ‘벨앤누보’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에세이 <낭만적 인간과 순수지속>을 펴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조피디(조PD)는 1998년 데뷔한 국내 힙합 1세대 가수입니다. 피시통신에 자작곡을 무료 배포하는 파격으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시대와 또 세상 따라 여기까지 왔어. 자유로와 이제 너는 날아”(‘이야기 속으로’ 중)라고 권했던 스물한살 청년. 18년 뒤(2016년) 두 아이의 아버지로 탄핵정국을 맞은 그는 ‘시국가요’를 무료 배포했습니다. 그가 지난해 11월 ‘조중훈’이란 본명으로 에세이집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음악인으로서 그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1998년 10월 피시통신 자료실에 ‘브레이크 프리’(Break Free)와 ‘이야기 속으로’라는 제목의 곡들이 엠피3 파일 형태로 올라왔다. “멋대로 굴다간 × 되지. (중략) 솔직히 까고 말해. 니네 비행청소년들의 미래 관심 있기나 해?” 당시로서는 생소한 힙합 장르에다 가사에선 욕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다운로드 수가 일주일 만에 10만건을 넘어섰다.
가수 조피디(41)는 한국 음악사에서 전례 없던 방식으로 자신의 곡을 무료 공개했고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데뷔 앨범 <인 스타덤>은 청소년 유해 매체물 판정을 받고도 약 50만장이 팔렸다. 이 신인가수의 데뷔 과정은 주요 일간지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서 다뤄졌다.
그로부터 18년 뒤인 2016년 11월7일. 한 글로벌 음원스트리밍 사이트에 시국가요 ‘시대유감 2016’이 올라왔다. 이번에도 조피디였다.
“순실의 시대가 상실의 시대/ 넌 나라를 우습게 했어 우리나라 전체/ 해외로 튀어? 엉망진창으로 남겨둔 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비판을 담은 곡으로 조피디가 가사를 적고 작곡가 윤일상씨와 공동 작곡했다. 닷새 뒤(12일) 열린 3차 광화문 촛불집회 무대에서 그가 외쳤다. “경찰들도 손을 머리 위로~.” 힙합이 시대를 파고드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후 울산과 부산의 촛불집회 무대에서도 그는 노래했다.
조피디가 촛불집회 1년 만에 책을 냈다. 지난해 11월29일 에세이집 <낭만적 인간과 순수지속>을 출간한 것.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위치한 쇼룸 ‘벨앤누보’에서 그를 만났다.
최근 국내 힙합계에서 불거진 여성혐오 논란에 대해 조피디는 “시대가 바뀌었는데 일부 ‘스타일’만 차용해 여성혐오를 고집하는 것이야말로 꼰대짓”이라고 비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촛불의 낭만, 그 순수성을 바라보다
―책을 낸 계기가 있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몇년 전 출판사를 차린 지인이 ‘책을 써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그간의 인생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나?
“나와 비슷한 연배나 나보다 어린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지만, 아무도 안 읽었으면 하는 초보 저자로서의 마음도 있다. 막판엔 자기계발서로 분류돼 편집자의 판단에 따라 일부 내용이 교훈성 어조로 탈바꿈했다. 민망하다.(웃음) 내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제목이 ‘낭만적 인간과 순수지속’이다. 어떤 의미인가?
“그간의 경험을 담은 제목이다. 한 예로 촛불집회는 촛불이라는 비폭력을 통해 민주주의를 복원한 행사였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가족과 함께 가수들의 공연을 즐겼다. 밖에서 관찰하면 마치 축제와 같았다. 나라를 바로잡으려고 시민들이 일어선 집회였지만, 그것을 바라보며 어떤 낭만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촛불집회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 때까지 이어진 것은 ‘좋은 사회를 꿈꾸려는’ 순수성이 지속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98년 피시통신에 자작곡 무료배포 한국음악사 전례없는 방식의 데뷔 예술 검열 등 사회문제 담은 곡 주목받으며 언론 사회면에 등장해
노무현 탄핵 반대·언론파업 집회 등 광장에서 시국가요 부르며 응원 힙합계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선 “인권 감수성 기르는 노력 필요”
―‘시대유감 2016’을 들고 촛불 무대 위에 올랐다.
“국정농단 사태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아버지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음악으로 말하고 싶었다. 2016년 11월 온라인 음원사이트에 시국가요를 올린 지 이틀 만(9일)에 촛불집회 주최 쪽에서 전화가 왔다. ‘토요일 행사에 와줄 수 있느냐’고 묻더라. 곡을 낸 지 며칠 만에 무대에 서기란 쉽지 않지만 (곡을) 만든 취지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승낙했다.”
2016년 11월12일 조피디는 촛불집회 무대에 오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일상이 형”(작곡가 윤일상)을 만나서 사전 리허설을 하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거리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준비 없이 본공연에서 바로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미국대사관 근처 카페에서 공연 직전까지 대기했다. 무대에 오를 시간이 되자 인파가 더욱 늘었다. 휴대전화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주최 쪽과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지니까 왕년에 매니저를 했던 경험(조피디는 2011년 힙합그룹 ‘블락비’를 기획하며 제작자로도 활동)이 도움이 됐다. ‘공연을 해야 한다’고 하니까 시민들이 길을 열어줬다. 내가 가수라는 건 못 알아보면서도(웃음) 무대 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무대로 뛰어 올라가면 공연이 시작되는 상황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틀 전 낸 신곡을 리허설도 없이 100만명 앞에서 부르는 순간이었다. 긴장될 수밖에.”
―그날을 시작으로 전국(울산?아산?부산?제주?천안)의 촛불 앞에서 노래했는데.
“가수 이은미·이승환씨나 작곡가 김형석씨 등 동료 음악인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김형석씨가 저를 보더니 묻더라. ‘여기 누구 알아?’ 어떤 계기로 오게 됐냐는 뜻이었다(웃음). 인연도 없는 나한테 공연을 청해준 주최 쪽에 어떤 식으로든 화답하고 싶었다. ‘필요로 하면 가겠다’는 생각에 촛불집회 말고도 다양한 집회에 참여했다. 언론파업 때도 그랬고.”
―정치·사회 문제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가수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정치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부끄럽지만 언제부턴가 지역선거에 누가 출마하는지, 그들의 공약은 뭔지가 남의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 내게도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이 다시 찾아오더라.”
그는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했다. 당시 ‘밀린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한겨레>의 ‘파파이스’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저와 비슷한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으리라 짐작한다. 한국인은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기질을 가졌다. 끓는점을 넘어서면 모두 전문가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의 뼈아픈 사건이 헌법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위로해본다.”
조피디가 집회 무대에 오른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2004년 3월20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무효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100만인 대회’에 가수 안치환·신해철씨와 함께 참여했다. 조피디는 당시 <한겨레>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탄핵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 위해 나왔다”며 “탄핵 결의안이 통과됐을 때 너무 황당해서 이런 무대가 있으면 꼭 서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2004년 탄핵 반대 때도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한 셈인데.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정치를 잘 몰랐지만 그때만큼 선거에 열을 올렸던 적이 없다. 투표 장소 알아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노무현을 뽑으라’ 권유도 했다.”
―왜 그랬나?
“그때 주변에 ‘노무현은 시대가 지금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때는 그렇게 느꼈다. 이상하게 ‘노통’이 좋았다.”
―정치적 의견을 밝히길 꺼리는 음악인들도 있다.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서 연예인 역시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다. 다만 상업적인 측면에서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대중의 관심을 요하는 직업의 특성상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정치 문제와 연결되면 입장이 다른 절반은 돌아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계산마저 필요 없는 사건이 2016년 가을에 벌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토록 형편없는 나라였나, 가사가 절로 나왔다.”
2016년 11월 광화문 촛불집회 당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있는 조피디. <한겨레> 자료사진
“힙합계 여성혐오, 시대 뒤떨어진 발상”
최근 국내 힙합계에서 ‘여성 혐오’가 화두로 떠올랐다. 일부 힙합곡의 가사에서 여성혐오로 의심되는 대목들이 문제가 됐다. 일례로 2015년 래퍼 송민호가 한 케이블방송에서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랩을 했다가 공분을 샀다. 2016년 탄핵정국 당시 등장한 시국가요들도 이런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디제이디오시(DJ DOC)가 ‘수취인분명’이란 곡에서 박 대통령을 ‘미쓰박’으로 표현해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디오시는 11월26일 ‘박근혜 퇴진 제5차 범국민행동’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국내 1세대 힙합가수로서 조피디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하늘이 형(이하늘)은 억울할 수 있겠지만 듣는 여성의 입장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원래 미국 힙합 문화에는 여성혐오가 기본적으로 포함된다는 해명도 있었다.
“미국 힙합에서 논란이 일어나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최근 미국 힙합가수 ‘제이지’가 발표한 일부 곡에 대해 동료 가수 ‘50센트’가 ‘이런 식으로 가사를 적으면 요즘 사람들은 싫어한다’며 트위터로 비판했다. 미국 힙합계 내부에서도 혐오적 가사의 수위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후배 힙합가수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미국 힙합도 여성혐오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거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달라’며 방어하는 것은 논리가 빈약하다. 미국 사회도 변했다. 지금은 여성인권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인권의식이 높아졌다. 사회변화를 무시하고 시대와 동떨어진 과거의 ‘스타일’에 머무른다면 그것이야말로 ‘꼰대’ 같은 짓이 아닐까. 살다 보면 스스로 ‘쪽팔려’ 할 때가 올 것이다. ‘아,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하며 숨고 싶을 때가.”
―2010년 더 이상 앨범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시는 전세계적으로 음반 제작 구조가 급격히 변하던 때였다. 그에 발맞춰 음반보다는 한두 곡 정도를 담은 디지털싱글로 전환할 거라 선언했는데, 최근 다시 음악 산업 구조가 달라지고 있어 여러 곡으로 구성된 음반을 제작 중이다. 그간 일부 음원사이트가 음원 수익을 사실상 독식해왔다면 이제 그 흐름이 소셜네트워크(에스엔에스)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확신하게 된 계기가 있나?
“미국 등 전세계에서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대성공도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지만 ‘멜로망스’나 ‘장덕철’ 등 요즘 온라인 음원 차트에서 약진하고 있는 가수들을 꼽고 싶다. 현재 주요 음원 차트 5위 안에 든 곡들 중에 기존 대형 기획사 소속은 아이돌그룹 ‘트와이스’밖에 없다.”
―대형 기획사 소속이 아니더라도 주요 유통사를 거치면 차트 진입이 쉽다는 얘기도 있다.
“몇 년 전부터 신대철씨 등 의식 있는 음악인들이 그런 문제점을 지적해온 것으로 안다. 그러나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주요 유통사나 음원사이트들도 언젠간 비주류 사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 실제로 멜론, 네이버 등 포털 형식의 웹은 지금 위기 아닌가?”
―왜 그렇게 보나?
“비트코인, 블록체인 등의 등장을 보더라도 더 이상 특정 플랫폼이 영원할 거라는 생각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지금은 파괴의 시대다. 음악계의 경우 음악인과 국내외 청취자들과의 직접 교감이 트렌드가 되면서 새로운 문화가 다가오고 있다. 방탄소년단도 동영상사이트 유튜브 등을 통해 전세계의 청취자들과 음악적 교감을 나누면서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네버랜드에서 세상 속으로
개인적으로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음악을 계속할 것 같다. 음악을 할 때 가장 즐겁기 때문”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멋있게 살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멋진 음악인의 삶은 무엇일까.
“가수 마이클 잭슨처럼 자신만의 ‘네버랜드’인 대저택, 그런 사적 영역에 있다가 정기적으로 월드투어를 다니는 것도 멋지지만, 나는 핑크플로이드나 메탈리카 멤버들의 삶을 좋아한다. 그들은 앨범 활동 안 할 때는 그냥 백수다. 자녀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자연스럽게 세상 속에서 늙어간다. 나도 그러고 싶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대중 앞에서 소신을 밝히는 대신 “나는 음악인이므로 음악을 통해 얘기하겠다”는 가수들이 있다. 어쩌면 그게 영리한 선택일 수도 있다. 앞으로도 시국가요를 제작하고 어렵더라도 정치적 소신을 밝힐 거냐는 질문에 조피디는 이같이 답했다.
“음악 밖의 세상, 진짜 사람들 속에서도 살 겁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