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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외벽에서 비상구까지…‘합법’ 뒤에 방치, ‘불법’과 만나 참사

등록 2017-12-25 05:03수정 2017-12-26 11:42

제천 화재 참사
①가연성 드라이비트
화재취약 지적에 관련법 고쳤지만
2015년 이전 건물은 ‘합법’
②필로티 건물 1층 무방비
발화점 주차장 취약지점 많지만
불연재·소방시절 관련 규정 없어
③수박겉핥기 소방점검
비상구 막히고 출입문 고장에도
한달 전 점검에서 ‘이상무’
22일 오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화재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관, 가스안전공사 등이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2일 오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화재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관, 가스안전공사 등이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화재 참사는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부주의와 관리 부실이 쌓아올린 비극이었다. 적어도 두가지 중요한 잠재적 위험성이 ‘합법’ 울타리 안에 방치되며 사고 가능성을 키웠다. 여기에 최소 두가지 불법적 관리 부실이 겹치며 걷잡을 수 없는 참사로 이어졌다. 한국 사회가 또 ‘인재’라는 이름의 대참사를 반복해 겪지 않으려면, 합법과 관행의 가림막 아래 묵인돼온 안전불감증과 이번 기회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하게 단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H4s위험요소 몰라라 한 ‘합법’ 가림막 화재가 난 복합스포츠시설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옛 두손스포리움)는 값싼 가연성 외장재로 지어졌다. 콘크리트 외벽 위에 단열재를 붙이고 시멘트를 덧바르는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건물 외부를 덮었다.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 이후 대형 화재의 유발 요인으로 지목된 뒤, ‘6층 이상 또는 높이 22m 이상의 건축물의 외벽 마감재로 불에 잘 타지 않는 준불연재료를 쓰도록’ 건축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소급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번 제천 참사가 발생한 건물은 그 테두리 안에 들었다.

이런 건물은 제천 말고도 전국 곳곳에 퍼져 있다. 지난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서울과 6대 광역시에 들어선 30층 이상 건물을 추려 조사한 자료를 보면, 1480개 동 가운데 101개 동이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중에서도 97개 동이 공동주택이었다. 6층 이상 건물로 범위를 확대해보면, 이런 건물은 훨씬 늘어날 터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처럼 안전관리 강화 이전에 지어져 잠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는 건물들에 대한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합법적으로 불안 요인을 안고 서 있는 건물에 대해 외장재를 교체하거나 방열 설비를 추가하는 등 개선 조치는 전혀 강제되지 않고 있다. 합법의 이름 아래 자칫 거대한 불쏘시개가 될 수 있는 고층 건물들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이런 잠재적 위험 건물에 대해선 특단의 안전 강화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개별 건물주에게 전적으로 부담을 맡기지 말고, 정부가 공공의 안전 강화 차원에서 대대적인 지원과 계도에 나서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는 “개정된 법대로라면 2015년 이전 건물, 그리고 6층 이하의 건물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며 “드라이비트 공법 시설물 중에서도 가연성 외장재로 지어진 건물을 우선 전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초 실태 파악부터 나서 전반적인 대책 마련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건물 1층을 주차장으로 쓰고, 독립 기둥이 건물을 떠받치는 필로티 공법도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역시 안전 규정은 미흡하다. 서울시립대 윤명오 교수(재난과학)는 “필로티 구조상 대피 통로(출입구)가 화재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통로를 따로 구획해 설계하거나, 화재 지연을 위해 1층 천장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등의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되고 있는 위험요소를 ‘불법’의 영역으로 밀어내기 위한 적극적인 제도적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피해 극대화한 작은 불법들 전체 사망자 29명 가운데 20명이 숨진 2층 여성용 사우나의 비극은 넘어가기 쉬운 작은 불법 행위의 위험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해당 목욕탕을 이용했던 시민들은 “창고 옆에 1층으로 연결되는 비상구가 있는데 목욕 바구니를 놓는 철제 구조물이 놓여 있어 항상 막혀 있었다”며 “자동문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했다. 이용객들이 절체절명의 다급한 상황에 비상구부터 떠올리지 못한 것은 수년 동안 지속된 작은 불법이 당연시돼온 결과일 것이다. 소방법 위반의 경우 적발되더라도 과태료 수준의 경미한 처벌을 받고 단속의 실효성도 낮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규정을 지키는 쪽이 손해’라는 인식이 일반화됐다.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비상방송도 없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누적된 불법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불거지지 않았다. 화재가 난 건물은 지난 11월 정기소방점검을 받았는데, 당시 민간 소방시설관리업체가 작성한 점검표에는 2층 여성용 사우나 비상구의 관리 실태와 자동문의 고장이 적시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청 관계자는 “여자 사우나라는 특수성 때문에 업체 직원들이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만연한 불법으로 인한 위험 요인을 예방해야 할 소방점검이 이번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민간업체들이 건축주로부터 비용을 받고 시행하는 탓에 제대로 된 점검이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소방법 등 안전을 관리하는 법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형준 초고층도시건축학회 연구원장은 “화재 시 현장 진입을 막는 불법주차의 경우 미국 같으면 모두 부숴도 무방하다”며 “형식적인 안전점검 실태, 진화 작업을 가로막는 사소한 불법에 대해 큰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하성 경일대 교수(소방방재학)도 “민간업자들이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소방점검을 민간과 소방당국이 크로스체크하는 등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처벌 강화 못지않게 무엇보다 규정의 실효성을 높이고 시민 안전의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금비 장수경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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