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가 벌어진 충북 제천시 복합스포츠시설 건물은 ‘드라이비트’ 공법을 사용해 지어졌다. 건물 외벽을 두르고 있는 스티로폼 단열재는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외장재는 ‘2015년 의정부 화재’ 등 대형 화재 때마다 화를 키워왔다. 허술한 제도와 부실한 안전관리의 틈새에서 참극은 구체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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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에 취약한 ‘스티로폼’ 드라이비트 사용 이 건물은 2011년 7월 준공됐다. 기본 구조는 철근콘크리트지만 건물 외벽은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마무리했다. 드라이비트 공법은 외벽과 내벽 사이에 단열재를 끼워넣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단열재를 곧바로 외벽으로 사용하는 공법이다. 문제는 어떤 단열재를 사용하느냐다. 일반적인 공사 현장에서는 공사 기간이 짧고 비용도 저렴한 이피에스(EPS) 단열재를 사용하는데, 이는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르는 방식이다.
불이 났을 때 스티로폼은 불길이 번져오르는 연료가 된다. 겉에 발라진 시멘트는 소방 호스의 물길을 막는 역할을 한다. 1층 주차장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많은 양의 연기와 유독가스를 내뿜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9층까지 번진 원인은 불에 잘 타는 드라이비트로 외벽을 둘렀기 때문이었다.
실제 제천 참사의 목격자들은 “주차장 건물 모서리 간판에 불이 붙더니 2층 간판으로 순식간에 옮겨붙었고 ‘펑’ 하는 소리가 3~4번 나면서 불이 외벽을 타고 삽시간에 위로 번졌다”고 말했다. 유영진 제천시 건축허가팀장은 “건물 외벽이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마감된 것을 확인했다. 화재가 순식간에 번진 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1월 사망 5명, 부상 125명의 피해를 낸 경기 의정부시 아파트 화재 때도 드라이비트 외벽이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혔다. 당시 제도 개선은 이뤄졌지만,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만들어진 건물은 화재에 취약한 상태로 곳곳에 남아 있다. 2015년 건축법 개정으로 ‘6층 이상 또는 높이 22m 이상의 건축물의 외벽 마감재로 불에 잘 타지 않는 준불연재료를 쓰도록’ 규정했지만, 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소급 적용을 받지 않았다. 참사가 있었던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건물은 2010년 건축허가 신청서를 제출해 법 적용을 피해갔다. 법 개정 이전에 건축 허가를 받은 노후 건물들은 화재 예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형준 초고층도시건축학회 연구원장은 “문제가 되는 외장재 사이에 불연재를 넣어줘 불길이 번지는 것을 예방하는 식으로 건축물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과 교수는 “지속적으로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면 정부가 분명한 개선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건축물의 위험도를 파악해 안전에 취약한 건물은 단계적으로라도 정비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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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 구획은 제대로 됐나? 비상통로 확보는? 불길이 빠르게 번져나간 요인으로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는 ‘층간 구획’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물을 시공할 때 배수 파이프 등이 지나가고 남은 공간을 열에 강한 충진재로 메워 화재 발생 시 불길이 다른 층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번 사고의 경우 불과 몇분 만에 건물 내부로도 불길이 크게 번져 충진재 설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교수는 “파이프 관통부, 배기용 환풍구 등 건물 곳곳에 구멍이 나게 돼 있다. 그 구멍난 부분들이 열에 강한 소재로 마감이 돼 있어야 하는데 제대로 시공이 돼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피난로와 방화시설이 제대로 설치됐는지도 점검해 봐야 한다. 이 건물 내부는 2~3층 목욕탕, 4~7층 헬스클럽, 8~9층은 식당 구조로 이뤄져 있다. 목욕탕과 헬스클럽은 탈의실, 탈의함 등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이 때문에 2층 사우나실에 유독가스가 유입됐을 때 피해자들이 제때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업시설 목적으로 어지럽게 정비된 구획으로 볼 때 전문가들은 건물 내부의 피난·방화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사 생존자들은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한 생존자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 2층 사우나에 들어서기 전 비상벨 같은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바로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김양중 건설기술교육원 외래교수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탈출을 돕는 완강기 등 비상대피 시설이 갖춰져 있었는지, 방화문은 제대로 설치돼 있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비상 통로가 잠겨 있었는지 △통로에 장애물이 놓여 있었는지 등도 소방법상 따져볼 사항으로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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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취약’ 필로티…불길 번지는 요인 됐을까? 발화 지점으로 1층 주차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 건물은 1층을 주차장으로 쓰고, 독립 기둥이 건물을 떠받치는 필로티 구조 건물이다. 주차장 설치가 용이하다는 이유로 도심 건축에 주로 쓰이는 공법이다. 2년 전 의정부 사고도 필로티형 건물에서 났으며, 이때도 1층에 주차돼 있던 오토바이에서 불이 난 뒤 건물로 옮겨붙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이번 사고가 ‘의정부 사고 판박이’라는 말이 나온다.
제천 화재도 1층 주차장 천장에서 처음 불길이 솟은 뒤 주변에 주차돼 있던 차량에 옮겨붙은 것으로 추정됐다.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주차장 천장 열선 공사 과정에 처음 불이 난 뒤 주차 차량에 옮겨붙었고, 차량들이 타면서 발생한 유독 연기가 빠르게 2~3층 목욕탕으로 확산돼 피해가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필로티 구조는 외벽이 뚫려 있어 공기 공급이 원활한 탓에 불길이 커지는 요인으로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1층 주차장 가운데서 2층으로 올라가는 출입문이 놓인 점 역시 연기와 유독가스가 곧바로 건물로 향하게 된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김엽래 경민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필로티 건물은 건물 1층에 공기가 통하기 때문에 바깥의 공기가 안으로 빨려들어가면서 불길이 더 번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불길이 급격히 확산된 직접적 원인은 드라이비트 외장재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제천/오윤주 신지민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