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가 벌어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화재 현장에서 깨진 창문 너머로 전날 화재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2층 여성 사우나 시설이 보인다.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1일 충북 제천시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옛 두손스포리움)에서 불이 나 모두 2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가운데 20명의 주검은 이 건물 2층 여성 사우나 시설에서 발견됐다. 추운 날씨를 사우나로 달래던 여성 이용객 대부분이 살아 나오지 못했다. 1층으로 직접 통하는 2층 비상구 앞에는 목욕 바구니가 쌓여 있었고 대부분은 비상구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가 난 건물은 필로티(벽체를 없애고 기둥만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형태) 구조로 지어졌다. 1층에는 차량 15대가 주차돼 있었다. 소방당국은 22일 전체 9층인 이 건물 1층 주차장 배관 열선 설치 작업을 하던 중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화재 원인을 추정했다. 열선을 설치하다 튄 불꽃이 11㎜ 스티로폼에 튀었고, 순식간에 번진 불이 주차돼 있던 차량으로 옮기면서 번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여성 사우나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있었다. 스티로폼과 차량이 불타면서 발생한 연기와 유독가스가 곧바로 2층 여성 사우나로 유입되는 통로였던 셈이다. 이렇게 대참사의 밑돌이 놓였다.
우연한 발화에 관리상의 부주의가 결합했다. 2층 여성 사우나 입구에 유리로 만들어진 자동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여성 생존자 ㄱ씨는 이 건물 5층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목욕을 하기 위해 2층 사우나로 이동하던 중 화재경보음을 듣고 그대로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 참사를 피했다. 평소 자주 이 사우나를 이용했던 그는 “2층 사우나의 자동문은 버튼을 누르면 열리는 방식이었는데 예전부터 문이 제대로 안 열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ㄱ씨는 “손톱만한 붉은 스티커를 정확히 눌러야만 자동문이 작동했는데 연기가 가득 차 경황없던 상황에서 (정확히 누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선 자동문이 전에도 고장 난 적이 여러차례 있었다며, 이번에도 고장 났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어떤 이유로든 다중이용시설의 작은 관리 부실이 대형 사고의 한 고리가 된 것이다.
더구나 2층 사우나에서 밖으로 바로 연결되는 비상구에는 목욕 용품과 각종 자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비상구 바로 옆이 창고였던 탓에 이용객들은 비상구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열리지 않는 자동문으로만 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2층 사우나에서 가까스로 살아나온 ㅇ씨는 <한겨레>와 만나 “나는 처음 연기 냄새를 맡자마자 자동문을 열고 나와 복도 창문으로 뛰어내려 살았다”며 “나중에 연기가 찬 뒤 나오려던 사람들은 문을 열지 못해 모두 죽은 것 같다. 원래 잘 안 열려 속을 썩이던 문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화재 당시 2층에서 발견된 사망자들은 이 자동문 근처에 몰려 있었다.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2층 방화문 안쪽에 유리문으로 슬라이딩 도어가 있는데, (출입문을 열지 못해) 그 안쪽에서 사망자들이 많이 발생했다”며 “1층에서 올라온 연기를 피해 밖으로 나가려다 그렇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은 연기가 차오르던 사우나에서 바깥으로 나갈 유일한 출구가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아비규환이 펼쳐졌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불길이 번지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야 했던 스프링클러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음식점 등 다중이용업소가 몰려 있는 이 건물에는 모두 356개의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화재 당시 작동한 스프링클러는 하나도 없었다. 이날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이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이 건물 1층 로비에 설치돼 있던 스프링클러 설비의 알람밸브가 폐쇄돼 있어 9층 건물 전체에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소한 화재 등으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 음식점 및 사우나 영업에 큰 방해가 될 수 있는 탓에 고의적으로 설비를 꺼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여기에 최초 30분의 골든타임을 흘려보낸 소방당국의 아쉬운 초동대응도 겹쳤다. 제천소방서는 21일 오후 3시53분에 최초로 화재 신고를 받고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소방대가 유리창을 깨고 2층 여성 사우나에 진입한 시점은 오후 4시30분께였다. 이미 20명이 숨진 상태였다.
그러나 불과 10분만 진입이 빨랐다면 사우나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던 이용객들 상당수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리라는 증언들이 나온다. 아내를 잃은 윤창희(54)씨는 21일 오후 4시21분에 마지막으로 아내와 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윤씨 아내는 “숨쉬기 힘들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 “가스가 올라와서 숨을 못 쉬겠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윤씨는 “유리창을 깨라”고 외쳤지만, 더 이상 아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소방당국은 “1층에 대형 엘피지 가스탱크가 있어 폭발을 막기 위해 1층 화재 요인을 먼저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통유리 외벽은 유독가스와 연기가 건물 내부에 가득 차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미로’ 같은 사우나 내부의 구조도 대피를 방해한 요인이 됐다. 복잡한 구조에 탈의실과 탈의함이 설치돼 길도 좁았다. ‘여탕’이라는 특수성도 대피를 늦춘 요인으로 보인다. 3층 남자 사우나에서 대피한 50대 남성은 “경황이 없어서 팬티 바람으로 뛰어나왔다”고 말했다. 화재 당시 건물주 이아무개씨도 화재 직후 층마다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대피시켰지만, 2층 여성 사우나 내부로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대피하라’고 소리만 질렀다고 소방당국이 전했다.
제천/신지민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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