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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깨지지 않는 통유리 안에서 평범한 이웃들이 숨을 거뒀다

등록 2017-12-22 16:54수정 2017-12-23 10:55

제천 화재로 가족·친지 잃은 조문객들 깊은 울음 토해
22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시민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2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시민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사연이 유가족과 지인 등의 입을 통해 22일 하나둘씩 전해졌다. “창문이 안깨진다”며 전화로 남편에게 절규하던 누군가의 부인, 딸과 손녀를 오랜만에 만나 연말을 보내던 누군가의 어머니, 닭갈비 가게를 하며 어르신 식사 대접 봉사를 하던 지역의 천사, 가족을 위해 김장배추를 절여놓고 잠시 운동하러 나온 누군가의 친구 등 우리 주변 평범한 이웃들이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22일 낮 11시께 스포츠센터 화재사고 유족들이 모인 충북 제천시 제천서울병원 유가족 대기실에서 ㄱ(37)씨는 울분을 토했다. “아버지가 저 안에 아내가 있다고 발을 굴렀지만 소용없었어요.” ㄱ씨의 부모는 함께 운동을 하려고 이번에 사고가 난 스포츠센터로 갔다. 불이 난 뒤 2층에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린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 장아무개(64)씨는 결국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어머니는 사우나에서 옷을 갈아입다 빠져나오지 못했다”며 ㄱ씨는 가슴을 쳤다.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ㄱ씨의 어머니는 불타는 건물 안에서 먼저 빠져나온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ㄱ씨는 “어머니가 전화가 와서 ‘유리가 안 깨져요’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발을 구르며 어머니를 구해달라고 애원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창문을 깨지 못했다. 유리창으로 뛰어내리면 죽진 않았을텐데”라고 말하며 몸을 떨었다.

불길에 휩싸인 사우나의 통유리 너머로 어머니의 목숨이 꺼져가고 있었지만, 주차된 차들 탓에 소방차는 진입에 애를 먹었다. ㄱ씨는 “소방차가 들어가는 길을 막은 차를 다 치웠어야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라고 한탄했다.

사랑하는 딸과 고3 손녀와 함께 목숨을 잃은 김아무개(80)씨를 시어머니로 둔 ㄴ씨는 21일 밤 11시께 충북 제천시 명지병원 대기실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숨진 김씨의 며느리 ㄴ씨는 “딸과 수능을 끝낸 고3 손녀가 고향에 내려왔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 2남2녀를 장성하게 키우신 어머니가 이렇게 가실 줄은 몰랐다”고 한탄했다.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ㄴ씨는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서 “어머니께서 막내딸 집으로 21일 오후 5시15분께 전화를 하셨고, 발견 당시 겉옷을 입고 계셨다고 들었다. 불이 난 게 3시 50분께이니까 그 후에 전화를 하시고 옷도 입으셨다면 그래도 대피할 시간이 있었던 게 아닌가”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21일 밤 제천 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앉아있던 정아무개씨는 이 사고로 사촌 제수 정아무개(51)씨를 잃었다고 했다.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왔다는 정씨는 “하늘이 원망스럽다”며 눈시울을 훔쳤다. 그는 “제수가 원래 오전에 사우나를 다닌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쩌다 오늘만 오후에 갔다고 했다. 사우나에 간 시간이 오후 3시5분쯤이라고 하더라”며 “화재 신고가 3시53분이라고 하던데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이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숨진 정씨의 지인 ㄷ씨는 “언니는 사우나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닭갈비 가게를 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다. 때가 되면 동네 어르신들을 불러 식사 대접도 하고, 겨울에는 연탄봉사도 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을 하늘은 왜 데려가냐”며 가슴을 쳤다.

22일 오전 제천 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유아무개(61)씨는 가까스로 화마를 피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낸 언니 백아무개(63)씨를 사고로 잃었다. 유씨는 백씨와 함께 운동을 하면서 친해졌다. 그는 이날 오후 2시께 운동을 마치고 센터를 나온 덕에 불을 피했다. 그는 “언니가 김장을 담그려고 배추를 절여놓았다고 했는데 미처 김장을 담그지 못하고 가버렸다”며 눈물을 훔쳤다.

일부 조문객은 소방당국의 초동대처를 지적하기도 했다. 숨진 신아무개씨와 20년 동안 알고 지냈다는 유명종(53)씨는 “화재 진압 당시 소방 굴절차가 잘 펴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유씨는 “굴절차가 펴지지 않아 몇 차례 다시 접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는데, 아래에서 보고있던 사람들 모두 ‘왜 저러지’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고 설명했다. “소방 호스가 중간에 찢어졌는지 물이 줄줄 새기도 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천/신민정 임재우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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