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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제천 화재, 의정부와 닮은 꼴…드라이비트·필로티가 피해 키웠다

등록 2017-12-22 11:27수정 2017-12-22 13:47

“2015년 의정부 화재에서 교훈 못 얻어 참사” 지적
필로티 구조 건물들에 ‘방화구역’ 지정 의무화해야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8층짜리 스포츠시설 건물에서 불이 나 119 소방대가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제천소방서 제공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8층짜리 스포츠시설 건물에서 불이 나 119 소방대가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제천소방서 제공
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에 있는 9층짜리 복합스포츠시설 ‘두손스포리움’에서 불이나 수십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이번 사고가 2년 전 발생했던 의정부 아파트 화재와 닮은꼴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앞선 사고에서 충분히 교훈을 얻고 예방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기사: 제천 화재, 29명 사망·29명 부상…사우나 갇혀 참변)

■ 가연성 소재 ‘드라이비트’ 공법이 원인?

2015년 발생한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와 이번 ‘두손스포리움’ 화재의 첫 번째 공통점은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외벽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유영진 제천시 건축허가팀장은 21일 “건물 외벽이 드라이비트 소재로 마감된 것을 확인했다”며 “화재가 순식간에 번진 한 원인으로 보고, 내부 마감재 등을 앞으로 살펴볼 방침”이라고 밝혔다.

‘드라이비트’는 ‘빨리 마른다’는 뜻으로, 건물 외벽에 스티로폼 등 상대적으로 불에 타기 쉬운 ‘가연성’ 소재를 붙이고 석고나 시멘트 등을 덧붙이는 마감 방식이다. 단열성이 뛰어나고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널리 사용됐다. 무엇보다 석재를 사용할 때에 견줘 비용이 50% 이상 저렴하다.

화재 진화 이후 불길에 그을린 ‘두손스포리움’의 외벽 모습.      이정아 기자leej@hani.co.kr
화재 진화 이후 불길에 그을린 ‘두손스포리움’의 외벽 모습. 이정아 기자leej@hani.co.kr
화재로 1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의정부 원룸형 도시생활형주택 ‘대봉그린아파트’도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마감됐다. 의정부 화재는 한 입주민이 4륜 오토바이의 키박스를 녹이기 위해 사용한 라이터에서 발화돼 옆 오토바이와 차로 옮겨 붙으면서 건물 전체로 순식간에 불이 퍼져나간 사건이다. 5명이 숨졌고, 125명이 다쳤다.

당시 10층 고층 건물임에도 살수기(스프링클러)가 전혀 설치되지 않았고, 양쪽 외벽은 불에 잘 타는 소재인 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바른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마감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제기됐다. 정부는 의정부 화재 이후 법령을 개정해 6층 이상의 모든 신축건물의 외장재로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성’ 재료를 사용할 것을 의무화 했지만, 두손스포리움은 2011년에 지어져 적용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각에서 드라이비트 공법이 이번 화재 피해를 키운 ‘주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 강원소방본부장이었던 제진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2010년 부산 해운대의 ‘골든스위트’ 화재와 의정부 아파트 화재는 건물 외벽의 불길이 확 번지면서 주된 원인이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지목된 바 있다”면서도 “이번 제천 화재는 현장 영상을 보면 건물 외벽을 통해 불길이 퍼지지 않았고, 건물 내부에서 불길이 바깥으로 내뿜었기 때문에 드라이비트 공법이 주된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제 교수는 또 “드라이비트 공법은 의정부 화재 이후 규제가 정비됐기 때문에 현재로선 ‘필로티’ 등 다른 원인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포항에 발생한 지진으로 기둥이 심각하게 파손된 ‘필로티’ 건물.   한겨레 자료사진
포항에 발생한 지진으로 기둥이 심각하게 파손된 ‘필로티’ 건물. 한겨레 자료사진
■ ‘필로티-주차장’…“필로티 방화구역 의무화 해야”

소방당국은 “(제천 화재 현장의) 1층 필로티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며 건물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차량에서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 당시에도 아파트 건물 필로티 주차장에 있던 오토바이에서 발생한 불길이 화재의 원인이었다. 의정부 화재와 제천 화재의 두 번째 유사점인 셈이다.

‘필로티’는 원래 ‘건축물을 받치는 기둥’을 의미했지만, 최근에는 건물 1층에 벽을 두지 않고 기둥만 세운 공간을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싸고 주차 공간이 적은 도심에서는 건물 거주자들의 주차공간과 쓰레기 수거 공간 등으로 필로티를 활용하고 있다. (▶관련 기사: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공중부양 ‘필로티’ 건축물 괜찮을까?)

화재 발생 전의 두손스포리움.   한겨레 자료사진
화재 발생 전의 두손스포리움.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방재회장을 지낸 정상만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22일 오전 <신율의 출발 새아침>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필로티 구조로 되어 있는 건물이 문제고, 두 번째는 필로티 구조에서 2층으로 바로 불이 올라가는 이런 통로 역할을 하는 문제가 있다”며 ‘필로티’ 형식의 건축양식을 제천 화재 피해를 키운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정 교수는 “통로 밑에 필로티 구조면이 넓은 구조로 돼 있고, 그것이 계단은 좁은 구조로 되니까 불이 나면 (불길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입이 된다”며 “필로티 구조는 사실 지진 때도 우리가 취약하다는 게 밝혀졌지만 의정부 화재사건 때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몇몇 연구논문에서는 필로티 구조의 건축물은 화재가 발생하면 다른 건축 양식에 견줘 불길과 연기가 내부에서 빠르게 번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제천 화재에서도 두손스포리움의 1층 필로티 주차장이 사실상 외부 공기의 유일한 진입로 역할을 하면서 불길과 연기가 내부 통로를 통해 빠르게 번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비어 있는 공간인 1층에서 불길이 번지는 연료가 되는 산소가 바람을 타고 유입돼 화재를 키우는 것이다.

이처럼 건물 내부로 빠르게 불길이 번지면서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사실상 고립됐다. 외부 승강기를 설치하는 규정은 고층 건물에만 해당하기 때문에 8층 높이였던 두손스포리움에는 탈출구가 없었다.

까맣게 탄 두손스포리움.  연합뉴스
까맣게 탄 두손스포리움.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필로티 공간을 주차장·쓰레기장으로 활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비상 통로를 별도로 마련해 화재에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시립대 제진주 교수는 “필로티 부분은 벽을 설치할 의무가 없다보니 불길이 번지기 쉬우므로 방화벽 설치와 방화구역 설정을 의무화 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며 “관련 법규가 지정되기 전까지는 필로티 건축물 이용자들이 화재 가능성을 대비해 탈출구를 익혀두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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